동물과 인간의 공존 위한 육식 절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노년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소박한 음식의 도덕적 우월성을 설명하는 <첫걸음>이라는 에세이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식탐을 연결지었다.
그는 특히 ‘육식’에 엄격했다. 육식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인간이 생명에 대한 연민을 불필요하게 억눌러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의 세계에 살았던 톨스토이지만 그의 이러한 도덕적 엄격함은 오히려 지금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커 보인다.

‘옥자’를 통해 엿본 공장식 도축과정
지난여름 화제가 되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는 유전자 변형 슈퍼돼지 ‘옥자’가 공장식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돼지들은 차례대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차가운 기계 속에서 부위별로 해체되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돼지 해체 공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 관객들은 극영화를 즐기러 왔다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육식주의 시스템의 주된 방어 수단인 ‘보이지 않음’, 즉 비가시성을 깨트려 버린 것.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Melanie Joy)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밀집사육시설의 돼지들이 전동식 연장과 기계에서 나는 소음, 압축 공기가 분사되는 소리를 들으며 죽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그 과정에서 공장 작업자들의 인간성 또한 파괴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스트레스를 받아 돼지를 더욱 난폭하게 대한다는 것으로, 공장작업자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어느 날은 살아 설치는 돼지들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어요. 그럴 땐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드세게, 무지막지하게 찔러서 숨통을 따고, 자기 피 속에 빠져 죽게 만들지요.”
비틀즈 출신의 뮤지션이자 ‘미트프리 먼데이’(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을 주창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도축장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안다면, 우리는 음식을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점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을 집어삼키는 소
세계 곡물 수확량의 1/3이 소와 다른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는 걸 알고 있는지? 그런 반면 10억에 달하는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부유한 국가들의 육류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함에도 곡물의 사료화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또한, 소위 개발도상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 사육을 위해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영양실조로 인한 여러 질병에 걸려 쓰러지는 상황이다.
이들 뿐 아니라 제1세계의 부유한 소비자들도 인공적인 단백질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산물을 먹는 대가로 육체가 콜레스테롤로 망가져 ‘풍요의 질병’인 심장병과 암 등에 걸려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 육식 문제를 고발한 고전 <육식의 종말>에서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쇠고기를 ‘차가운 악’이라고 명명했다. 이 ‘차가운 악’은 기술적 전제와 시장의 목적에 의해 탄생했다.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고 기술과 제도 속에 그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차가운 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과잉 육식이 야기한 문제를 다 인식하더라도 모두가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봉준호 감독조차 영화를 만들고 나서 육식을 ‘덜’ 하게 됐다고 고백했을 정도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폴 매카트니의 “Meat Free Monday”(meatfreemondays.com) 캠페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환경을 위해 월요일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현실적 제안이다. 지구를 회복시키는 한 걸음을 내딛게 될 뿐 아니라 과다영양섭취로 야기되는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건강 또한 지키게 될 것이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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