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이 바쁘게 일하시느라 비운 자리를 형이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말을 잘 듣고 자란 편입니다. 주일에 과자라도 사 먹다가 걸리면 무릎 꿇고 의자 들고 벌섰던 기억이 있습니다. 혼날 때마다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형에게 한 번 짜증을 냈습니다. 내가 정리해 놓은 서랍을 형이 만진 모양입니다.
형은 그날 깜짝 놀랐습니다.
‘동생이 화를 내는구나. 동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동생이기 전에 이 아이도 한 사람이구나.’
오랜 시간 동안 형과 수직적인 관계였다가 그때부터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육아가 힘든 이유는 아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마음대로 움직여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이 다 함께 집을 나서야 하는 아침은 늘 정신이 없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거나 사고를 쳐서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그나마 어릴 적에는 야단을 치거나 질서와 규칙을 가르쳐 가며 부모가 원하는 시간과 방향으로 걸을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쉽지 않을 문제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인생에 부록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거나 종속된 위성이 아니라 별개의 또 다른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품안에 있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그 때는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가지에 쉬어갈 나무가 될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씨앗과 크고 풍성한 나무는 하나입니다. 나무를 대하듯 씨앗을 품겠습니다. 씨앗은 자라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요셉
색약의 눈을 가진 다큐 사진작가. 바람은 바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그늘은 그늘대로 진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글과 사진과 그림으로 노래한다. 문화예술 아카데미 Tiissue 대표, 매거진 <Band-aid>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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