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준비하는 몇 가지 마음-되짚어보기

부모와의 헤어짐을 경험해야 하는 이들, 그리고 헤어짐을 경험한 이들 모두에게 중요한 작업은 ‘되짚어봄’일 것이다. 사랑했던 추억들과 그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것. 필자의 경험이 담긴 글을 통해 헤어짐을 앞둔 우리가 해보아야 할 작업인 듯싶다. <편집자 주>

아버지가 85세를 넘으며 부쩍 약해진 모습이었다.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어렴풋이 염려하면서도 ‘괜찮다’고 지내왔는데, 이젠 막연한 두려움 앞에 무엇인가 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옆에 사는 오빠가 실제적인 준비는 하지만 부모와의 헤어짐을 앞두고 나만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갑자기 들이닥치는 일에 심장이 너무 많이 뛰는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처음 당하는 큰 일로 지나치게 멍한 상태가 될까 방어하려는 것이었다.

무얼 할 수 있을까.
종이 상자에 쌓아둔 아버지의 작품들을 꺼냈다. 두툼한 손으로 눌러쓴 편지와 카드, 그리고 늘 최선을 다해 찍은 사진들을 연도 별로 나눠놓고 읽어 보았다. 웃음이 새어나오는 아버지의 꾹꾹 눌러 쓴 필체와 어투 속에 삶의 스토리가 따스하게 생각났다. 사진 찍을 때마다 예쁘게 나오려 한결같이 얌전하게 웃고 있는 엄마, 그리고 나중에라도 우리가 찾아가야 할 북한의 외갓집 주소를 찾아냈다.
그러다보니 엄마 아버지께 아직 살아계실 만한 친척들이 누군지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8남매의 다섯째니까 아래로 한두 분 이모는 있겠네.
“큰조카들 이름 기억나요?”
그날 통화는 곧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구체적인 말들이 오고 갔다. 그때부터 전화 통화는 더 성실하고 충분히 길게 이어졌다.
아버지 앞으로는 근지러워 부칠 생각이 없는 감사편지를 주저리 쓰고 있었다. 누구에게 보이지 않을 마음으로 글을 쓰니 유치한 속마음이 나왔다.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항상 좋아해 주셨지요. 여러 형제 중 스스로 요셉이라 여길 만큼. 학교 시험에 떨어져 축 처져 있을 때 아버지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도와주겠다고 하셨고, 하는 일마다 응원해 주셨지요. 다 알아요….”
이런 정리가 있었음에도 아버지가 떠나시자 쉰 살의 다 큰 딸은 한동안 담이 없어진 오두막 같은 심정을 느꼈다. 이만큼의 이별 준비조차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다.
엄마가 90세를 넘으며 아버지 때 겪어본 일이라 시간을 내어 두 주간을 엄마 곁에서 지내기로 했다. 곁에서 잠자리 봐드리고 목욕하는 거 도우며 생선구이, 파절이로 짧아진 입맛을 맞추려 했다. 원하는 대로 옷장을 정리하고 테이블에 놓인 성경, 안경, 약, 물, 휴지, 노트와 펜을 집어드리니 편하다고 좋아하셨다.
‘엄마는 나 어릴 때 살아있는 송사리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을 많이 해서 나는 뭔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어.’
‘누에는 뽕잎만 먹는데 명주실을 뽑아내는걸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지? 부담스러웠어.’
‘엄만 옛날 사람이면서 카운슬러를 어떻게 알아서 나한테 그걸 하라고 했어?’
생각나는 대로 묻고 얘기하는데 엄마는 글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시간 갖기에 좀 늦은 거 같다.

엄마와 그렇게 시간을 가진 한 달 뒤 엄마도 떠나셨다. 사람이 이렇게 영영 헤어지는구나. 이젠 떠나는 일이 실감이 난다. 생각이 정돈된 거 같아도 머리가 띵한 채로 비행기를 탔다. 통곡하거나 정신없는 사람같이 그 기간을 보내게 되지 않았다. 약간의 질문이 남아있는 채로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여전히 부모님을 누가 물어오면 다 돌아가셨다고 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 말이 어렵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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