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준비하는 몇 가지 마음-공감하기

헤어짐을 준비하는 마음 중 하나는 ‘공감하기’입니다. 어린 시절 알지 못했던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나이 들어 살다가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때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이해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부모를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마음먹는 것이 필요합니다. <편집자 주>

엄마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엄마는 늘 울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우는 걸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아. 울지 말고 네가 할 일을 해.”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서도, 입술에서 피가 나도 엄마는 꼿꼿했다.

무적 엄마
나는 엄마가 무적인 줄 알았다. 엄마는 밤 11시에 일어나 다음 날 나와 동생들이 먹을 밥과 반찬을 준비했다. 스킨과 로션을 대충 바르고 자정이 겨우 지난 시간, 엄마는 출근을 했다. 남대문 시장의 아동복 상가, 내 기억에 의하면 27호. 상호는 ‘선화’. 엄마는 큰 딸인 나의 이름을 가게의 이름으로 내걸었다.
엄마는 밤새 장사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잠들기 전 내가 도착하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내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술을 거르는 날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엄마는 도중에 깨서 폭언과 폭력을 혼자 감당해냈다. 혹여 내가 맞을까 나를 막아서고, 동생들이 다칠까 동생들을 안아주셨다.
“나도 힘들어. 나, 너무 힘들다고.”
어느 밤, 엄마가 울었다. 엄마의 입에서 그 말이, 울음과 함께 쏟아져 나왔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무적이니까. 무적이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 밤,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한 바탕 난리가 났고, 나는 울다 잠이 들었다. 자다 깨서 엄마를 찾았는데, 부엌 한 구석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엄마라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믿기 싫었다.
“엄마?”
내 소리에 엄마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그러다 멈췄다. 이제 감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드신 걸까? 갑자기 모든 걸 체념한 듯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나도 힘들어. 나, 너무 힘들다고.”
엄마가 뱉어낸 말은 딱 그 한마디였는데, 나는 엄마의 울음이 내내 그렇게 들렸다. 그 밤, 처음으로 의심했다. 엄마가 무적이 아닐지 모른다고. 이 모습이 엄마의 정체일지도 모른다고.

엄마가 돼서야 알아버렸다
아침이 왔다. 식탁 위에 밥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맞이했다. 엄마는 계속 무적이고 싶었던 걸까? 엄마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엄마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무적이 아니라면, 내가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영원히 꼿꼿하기를 바랐다.
엄마는 그런 나의 바람을 배반하지 않고 살다가 가셨다. 하지만 나는 자주 배반하며 산다.
“엄마는 무적이 아니야.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해주지만,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희가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내 삶도 중요하거든.”
나는 딸들에게 곧잘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밤, 내가 꾸었던 꿈은 꿈이 아니라는 걸. 엄마는 무적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걸.
나는 자주 울어 버린다. 내가 상담하는 아이의 아픔이 불쑥 올라오기도 하고, 내 삶의 힘겨움이 갑자기 치밀어 올라오기도 한다. 글을 쓰고, 상담을 하고, 강의를 하는 내가 엄마 노릇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자주 마주한다. 어쩌면 나를 포기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오선화’라는 이름도, ‘엄마’라는 이름도, 다 내 이름이니까. ‘엄마’의 삶이 ‘나’의 전부가 될 수는 없어도 참 소중한 일부이니까.
딸들에게 ‘오선화’를 주장하고 나면 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도 알았을까? ‘엄마’가 아니어도 ‘박인숙’이라는 걸. ‘박인숙’은 ‘엄마’로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밤, 나는 엄마를 참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아주지 못했다. 내 몸으로 엄마의 약함을 느끼고 나면, 꿈이라고 우길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이제 와서 그 밤의 엄마를 공감한다. 무적일 수 없는 나를 보며, 무적이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 와서 느낀다. 가끔 그 밤은 꿈으로 찾아온다. 나는 엄마의 울음을 보며, 엄마에게 말한다. 울어도 된다고. 엄마는 무적이 아니라고. 요즘 자꾸 그 밤의 내가 야속하다. 이제 와서, ‘엄마’로만 살았던 ‘박인숙’을 구해주고 싶다.

오선화
여러 권의 동화와 청소년책을 썼다. 또한 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써나쌤’으로 활동하며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너는 문제없어>, <니가 웃었으면 좋겠어>, <매일 성경태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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