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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해도 저는 여전히 교사입니다”
전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장 강점석 선생
[214호] 2017년 10월 01일 (일) 박명철 @
   

 42년 교직 생활 마치고 정년퇴임
아프리카 가나에 초등교육 봉사 준비  

# 퇴임식
강점석 선생(수원제일교회 장로)은 지난 8월 29일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장 생활을 끝으로 42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여섯 학급의 전교생 52명이 선생님을 위해 정성껏 퇴임식을 준비했다. 1학년은 사탕목걸이를, 2학년은 종이꽃을 만들었다. 조금 머리가 굵은 3학년은 편지를 쓰고, 4학년은 예쁜 카드에 그림과 글을 담아 퇴임하는 선생님께 드렸다. 그렇게 선생님은 평생에 잊지 못할 환상적인 퇴임식을 맞았다.
“남들처럼 교장이나 장학사가 아닌 그저 평교사로 은퇴했지만 ‘나는 선생이다’는 자부심이 컸어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제 길을 걸었고 보람도 많이 누렸으니까요.”
뉴질랜드에 있는 아들까지 아버지의 퇴임식에 함께했다. 강 선생은 그날 아들의 눈에 흐르던 눈물을 똑똑히 보았다. 아들의 눈물은 아마도 감사와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아들의 진심이었으리라 생각했다. 학교에 다니며 방황하던 아들이 자퇴를 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듯 해병대에 입대했을 때 아버지는 3년 6개월 동안 매일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편지를 나누며 인생의 키를 비로소 다잡을 수 있었다.
어느 시인이 강 선생의 시 “길 스케치”를 낭송했다.

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지? / 숲길, 눈길, 올레길, 둘레길, 논길, 빗길 / 산길, 가로수길, 갈림길, 피톤치드길 / 집으로 가는 길, 꽃길 / 하늘 가는 길 / 솔로 탈출하는 길 / 아이들 생각을 못 따라간다 / 종알종알 재잘재잘 / 잘도 만든다 // 근데 난 무슨 길을 만들까? / 자신과 싸움의 길 / 원칙을 고수하는 길 / 십자가의 길 / 이웃을 사랑하는 길 // 감사의 길 / 사랑하는 이와 걷고 싶은 길.

아트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집을 만들고 정원을 만들고 길을 만드는 걸 보면서, 그가 물었다. “너희들에겐 무슨 길이 있니?” 그랬더니 아이들이 저렇게 대답했다. 그걸 떠올리며 쓴 시였다. 그러고 보니 먼 길을 왔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길을 걷는 중이었다.
이제 또 가야 할 길을 만들면서 걸어가야 했다.

# 풍도살이
2011년부터 3년 동안 강 선생은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장으로 풍도 주민이 되어 살았다. 풍도 사람들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었다. 풍도 사람으로 그가 한 일이 적지 않았다.
유치원이 없는 풍도에 유치원을 설립하고, 인터넷 전화를 통해 풍도 아이들이 원어민과 영어회화를 하도록 했으며, 오래된 학교를 새로 지어 풍도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덕분에 풍도 사람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느라 섬을 안 빠져나가도 되었고, 풍도의 야생화를 본 관광객들은 학교까지 관광코스에 포함하였다. 바다를 배경 삼아 공연할 수 있는 야외음악당도 그의 노력으로 지었다.
그는 아름다운 풍도를 노래하여 시인이 되었다. <풍도, 그 섬에 북배딴목 있었네> <풍도, 그 하늘은 나의 보좌 그 땅은 나의 발등상> <풍도, 그 섬 사랑하기에 아름답다> 등 그가 낸 시집 세 권은 모두 풍도를 노래한다. 풍도에 얼마나 빠졌던지 지역의 공무원이 풍도를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다. 그는 풍도에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풍도 앞바다는 청일전쟁의 아픔이 수장되어 있어서 동북아 3국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아내는 기간제교사로 풍도의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배운 글로써 일기와 편지를 썼다. 그러다 보니 풍도는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 나는 선생이다
강 선생은 교육대학을 마치고 발령을 기다릴 때 잠시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때 어떤 연수회에 참여했다가 강사로 온 어느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내 천직은 선생이다”라고 무릎을 쳤다. 아이들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 교육을 하기로 다짐하고 교사가 됐다.
무슨 일을 맡기든 그 일에 정성을 다했다. 한때는 체육을 담당하여 농구감독이 되었다. 그저 그런 농구감독이 아니라 전국소년체전에서 두 차례나 금메달을 따는 ‘어마무시한’ 감독이 됐다. 책을 보면서 농구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 일을 13년 동안 하는 사이에 많은 제자들을 길렀는데 현재 KT&G 소속 국가대표인 양희정 선수도 그중 하나다.

# 평생의 감사제목 ‘아 하나님’
어느 시골 교회의 가난한 목사님 딸이 “하나님 나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하고 묻다가 찬양을 잘해서 1000곡의 노래를 지어 부르기로 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때 강 선생도 자문했다.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 그래, 1000편의 시를 지어 주님께 드리자 다짐했다. 그분을 향한 감사가 끝이 없어서이다.
“내 인생의 감사제목은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아버지를 전도했고 형제를 전도했어요. 우리 가문의 첫 장로가 되었고, 예수님 덕분에 믿음 좋은 아내를 만났고, 좋은 교회와 좋은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풍도의 시인이 된 것도 감사하고, 41년 2개월 동안 아무 사고 없이 교사의 일을 마쳤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베들레헴선교회에서 임원을 하면서 베들레헴한국문화관을 짓는 데 기여하고, 세계선교신학원 부이사장으로 큰돈을 헌금할 수도 있었어요. 교회에서 개척교회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동탄제일교회 개척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 일을 위해 교직으로 42년간 일하고 난 뒤 받은 퇴직수당을 모두 헌금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일이 감사의 제목이에요.”

그러나 강 선생에게는 감사도, 교사의 일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퇴임 후 아프리카 가나에 가서 초등교육 봉사를 하려고 한다.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일인데 건강검진에서 합격하면 곧 가나로 떠나게 된다.
“예수님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고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서 백합화를 보게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였어요. 저는 그 말씀이 참 좋아요. 내 인생을 돌아보면 그 말씀이 구구절절 옳거든요.”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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