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멀리하는 명절 아닌, 이해하는 명절 되기

언제부턴가 명절 뒤에는 ‘증후군’,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말이 붙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전통적으로 그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이라는 명절의 사전적 정의가 무색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기지 못하는 불편한 날이 된 것이다. 왜 우리의 명절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사회구조와 유교 문화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말 한 마디만 바꿔도 우리의 명절 풍경은 달라질 수 있다.

√ 할아버지, 스마트폰에 이런 기능 있는 거 아세요?
지금 우리는 유래 없는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다. 젊은이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만난데다 세대가 다른 어른과 대화하는 건 늘 어렵고 어색하다. 공통된 관심사가 없어 애꿎은 정치 논쟁을 하다가 감정이 상하거나 일방적인 훈계로 소통이 어긋나는 게 다반사. 이럴 때 어른께 먼저 다가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 스마트폰에 이 앱 한 번 깔아보세요
평소에 누구한테 자세히 물어보기 어려운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며 어른의 답답함을 풀어드리는 것이다. 또는 “유튜브에서 박막례 할머니 영상 보셨어요?”라며 새로운 미디어 보는 법을 알려드리고 거기서도 만날 수 있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은 방법.

√ 혼자 지내는 삶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지!
한편으로는 1인 가구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비혼·이혼 상태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경우들이다. 사회 문화가 복잡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가족 형태 또한 이제는 단일한 가족구성만을 생각할 수 없는 것.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의식 깊은 곳에서는 아빠·엄마·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 ‘온전한’ 가족 형태라는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홀로 지내는 이들에게 “언제 결혼할 거니?”, “계속 그렇게 살 거야?”, “외롭지 않아?” 등의 피상적 인사는 금물이다. 그보다는 각자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음을 존중하며 ‘홀로 살 자유’를 존중하고 “혼자 지내는 삶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지”라고 담담하게 여겨주면 어떨까.

√ 고생이 많지? 쉬어가면서 해라~
취업준비생, 대학을 졸업한지 오래된 채 알바를 하며 구직활동 중이거나 대학 졸업을 미룬 채 수험생활 혹은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매일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을 쓰고 있을 청년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건 취직 여부에 대한 질문이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의 어설픈 조언, 외모도 경쟁력이라며 좀 꾸미고 다니라는 충고가 아니다.
“고생이 많지? 쉬어가면서 해.”
격려하며 커피라도 한 잔 사주면 어떨까. 특별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 요즘 무슨 게임하니? 재밌게 보는 웹툰 좀 소개해줘
중·고등학생 친척들에게 무심코 던지는 “올해 몇 학년이지?”, “공부는 잘 하니?”처럼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도 없을 것이다. 어른 입장에서 청소년을 내려다보며 하나마나한 질문으로 인사하기보다 청소년 입장에서 대화의 물꼬를 터보자.
“재미있는 웹툰 뭐 있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거다. 그들 자신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어색함이 덜어지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학교생활 이야기까지 나누며 그들의 고민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가 만든 경쟁 시스템에 피곤할 그들에게 명절 연휴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따뜻한 명절을 선물하는 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가능하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상대를 무시하거나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 무심함이 명절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고 가족을 더 어색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오히려 “가족이니까” 더욱 매너를 갖춰보자.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세대와 다채로운 가족 구성원이 복잡하게 부대끼는 명절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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