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0일, 마르틴 루터는 95개의 반박문을 내걸면서 서슬 퍼런 교황시대에 ‘종교개혁’의 불꽃을 터뜨린다. 그런데 믿음의 용장 마르틴 루터가 우울증을 앓았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루터뿐 아니라 존 칼빈, 찰스 스펄전, 존 웨슬리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다윗도 시편 곳곳(22, 25편)에 우울증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은 사실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믿음이 온전하면 우울증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정말 이들이 믿음이 약해서 우울증을 앓게 된 걸까?

하나님은 우울증 환자들을 특별히 잘 이해하실 가능성이 많다. 하나님조차도 피조물인 인간들을 위해 독생자가 십자가상에서 처참하게 죽어야 한다는 사실로 한탄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창세기 6:7)
전쟁과 범죄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자가 더 많은 시대다. 이것은 우울증이 사회적, 영적, 육체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며, 아직도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모호한 면이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의사도, 환자도, 기독교 상담가도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하며, 우울증 환자를 대할 때 겸손해져야 한다. ‘기독교 상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게리 콜린스는 우울증에 대해 다루면서 신체적 증상이 있거나 초기 상담에서 호전되지 않으면 유능한 의사에게 위탁해야 한다고 했다.

우울증 환자의 고통 중 하나는 환자로서 대접 받지 못하고 마치 영적이고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분위기다. 많은 유명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고, 상당수가 자살 직전까지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울증을 영적인 문제로만 보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크리스천 우울증 환자들은 더욱 음지로 들어가 극한 상황으로 가는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환자라면 의학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항우울제를 포함해 발달된 의학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항우울제가 만능은 아니지만 수많은 환자들을 정상생활로 이끈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특히 중증 우울증에서 자살을 막는 아주 중요한 치료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우울한 감정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그 감정을 ‘죄’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자체로 하나님과 소통했다.
우울증을 앓았던 마르틴 루터는 우울증의 해결책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1. 혼자 있지 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라
2.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라
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깊이 의지하라
4.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고 휴식을 취하라.


우울증 환자를 대할 때 다른 환자와 동일하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권유하면 되지, 욥의 친구들처럼 영적으로 강건해지라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기도 하는데,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앓으며 신앙적으로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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