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랍비 힐렐에게 한 제자가 “선생님,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무엇이 다릅니까?”라고 묻자, 랍비는 “현명한 자는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모른다”고 답한다. 그렇다. 어리석은 자는 위험한 것을 모른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속의 비운의 여인 안나, 그녀의 불행은 젊고 세련된 블론스키에 대한 맹목적 열정으로 인해 남편 카레닌과 어린 아들 세료자를 남겨두고 그 연인과 유럽여행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안나는 ‘열정으로만 채워진 사랑’이 모든 것을 전소시키는 ‘발화성 위험’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변심한 블론스키에 대한 분노로 인해 화물열차에 스스로 몸을 던져 자신을 스스로 처형하던 순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삶에서 ‘ㄹ’ 받침의 세 글자만 조심하면 많은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ㄹ’ 받침의 세 글자란 ‘말, 칼, 술’이다.
먼저 ‘말’이다. 말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자 사람을 죽이는 사인검(死人劍)이기도 하다. 격려와 위로의 말은 쓰러진 자를 일으켜 십리(十里)를 걷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험담, 이간질, 자기 자랑은 삶을 지옥으로 편입시키는 악이다. 이런 말들은 ‘소음’일 뿐이다. 이런 소음이 지배하는 자리에 머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음은 ‘칼’이다. 칼은 자신을 지키는 무기, 권력을 의미한다. <군주론>을 저술했던 마키아벨리는 “그 사람에게 권력과 황금을 3일간만 맡겨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역사는 선한 사람조차도 손에 황금과 권력이라는 칼이 쥐어지면 변하는 것을 증언한다. 칼을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술’이다. 바벨론 탈무드에 의하면 악마가 술을 제조할 때 그 속에 양과 사자와 원숭이의 피를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술을 먹게 되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하다가 이후에는 사자같이 사나워져지고 마지막은 원숭이처럼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술은 그 자체도 위험하지만 술을 먹은 후 야기되는 결과가 더 큰 위험이다.
잠시 가던 길 멈추고 혹 그대 삶이 ‘ㄹ’ 받침의 세 글자와 어떤 사이인지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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