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쯤 전의 일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 자신은 목회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심각하게 직업(?)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릴까, 작은 음식점을 운영해 볼까 하며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좋은 책을 한 권 만났다. 그리고 그 한 권의 책 덕분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 책은 스캇펙(Morgan 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책이다. 그는 그 책의 첫 머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내 나름대로 조금 고치고 줄여서 인용해보겠다).

“삶이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이다. 이것이 위대한 까닭은 우리가 이 진리를 이해하면 삶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어려운 것임을 깨닫고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란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삶이 어렵다는 것이 인정되었기에 삶이 어렵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삶이 어려운 것이라는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끊임없이 삶에 대해 신음한다. 그들이 가진 문제에 대해, 그들이 지고 있는 짐에 대해, 자신의 삶의 어려움에 대해, 소리 내서 때로는 조용하게 신음한다. 마치 삶이 일반적으로 쉬운 것인 양, 또 삶이란 쉬워야 히는 것인 양 그들은 신음한다.
그들의 신음소리 뒤에는 잘못된 믿음이 소리 없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자신에게만 부과된 특별한 종류의 어려움이라는 믿음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신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도 이렇게 신음하며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문제들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통스런 삶의 문제들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내 나이가 스무 살이라면, 20년 동안 인생의 파도와 싸워 왔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삶이 어려운 것이라면 어려운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수시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다. 정지환의 <30초 감사>라는 책에 보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한 평생을 참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았다.
1597년 어느 날, 이순신은 어명 거부 죄목으로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28일 만에 백의종군으로 간신히 풀려난 그는, 4월 1일 ‘난중일기’에 “맑음. 옥문을 나왔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4월 2일에는, “필공을 불러 붓을 매게 했다”고 적었다.
‘맑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심정의 표현이고, ‘붓을 매게 했다’는 것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막다른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체념이나 분노, 절망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성웅’(聖雄)이고, ‘나라를 건져낸’ 최고의 지도자이다. 아마도 그는 ‘삶이란 어려운 것’이란 위대한 진리를 알고 있었나 보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수그러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문턱이다. 무더위만 지나가면 살 것 같지만, 우리는 이제 곧 너무 춥고 미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할 것이다. 날씨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문제들의 연속이다. 재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등.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지금, 다른 사람 이야기할 것 없이 나부터 먼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암송하곤 하는 라인홀드 니버 목사님의 기도문을 조용히 암송해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차이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 차이를 통해서 저 또한 자유롭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주저함 없이 바꿀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방원철
여전히 목회가 버겁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꼬박’ 살며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목사. 마태복음 5장에 기인한 선교적 교회 실현에 깊이 관심 갖는 하늘가족교회(구 성광교회)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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