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매이지 않고 취향이 만개하는 장

공들여 사는 이들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에 그냥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중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독립 잡지라는 형태로 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걱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청춘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독립잡지를 보노라면 공들여 사는 사람들이 ‘어른’들만의 것이 아닌 것에 안도하게 된다. - 편집자 주

 
1990년대 중반, 홍대 앞은 인디음악이 태동하던 곳이었다. 인디음악은 ‘거대 자본 같은 상업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음악’으로 마니아층을 만들었고, 백만 장씩 팔리는 발라드와 댄스 음악 외에 다른 음악 취향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비록 백만 명이 한꺼번에 그들의 음악을 소비할 거란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 홍대와 연남동에서는 90년대의 인디음악처럼 독립잡지가 활발히 제작・유통되고 있다. 제작과 유통방식이 주류잡지와 다르게 제각각인 독립잡지는 인디 음악이 그랬듯 자본과 대중의 시선에서부터 자유롭다. ‘내용과 표현에 있어 독립적인 콘텐츠’를 유지하는 것이 이들 독립잡지의 정체성으로 매겨져 신선한 이야깃거리가 잡지로 묶이고 있는 중이다.

재건축 앞둔 아파트 주민부터 고등학생까지
종이 매체 시대가 저물어 갈 거란 예측이 무색하게 총천연색 개성을 머금고 인쇄된 독립잡지에 깃든 힘은 무엇일까.
상업 잡지가 소위 ‘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언론사 지망생, 고등학생,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주민, 문단의 등단 시스템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 시인과 소설가 등이 주체인 독립잡지에는 숨겨져 있던 ‘비주류’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그들이 빚어내는 온갖 담론과 창작기록에는 돈의 논리에 물들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팔딱인다. 이런 독립잡지들은 1인 혹은 소수의 인원이 주제를 기획해 직접 글을 쓰거나 필자를 발굴하고 손수 책을 편집하며 수제품을 만들 듯 공들여 만드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여러 독립잡지 중에서도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기록을 담고 있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제작자의 그런 ‘공들임’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독립잡지다. 재건축을 앞둔 30여 년 된 아파트가 사라지기 전에 그 안에 담긴 주민들의 삶과 추억을 기록하는 제작자 이인규 씨의 작업이 고스란히 잡지에 담긴다. 4호까지 나온 이 잡지에는 아파트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과 주민들의 개별적 추억이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 나온 <안녕, 둔촌주공아파트×가정방문>에는 현 주민들의 꾸밈없는 집 안 사진과 인터뷰까지 담겨 있다.
사람들을 만나 역사를 기록하고 자료를 모아 내용을 편집하고 디자인까지 하는 이인규 제작자는 이곳이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시절을 보낸 소중한 곳”이며 “늘 마음속으로 돌아가고픈 고향”이기 때문에 애정을 담아 잡지를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이 안에는 세련된 편집에 잘 쓰인 글들이 담긴 잡지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위로의 힘이 있다.
이 잡지 뿐 아니라, 등단과 비등단의 구분이 없는 문예지 <더 멀리>에는 젊은 작가들의 독창적 시선이 전달하는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등 독립잡지에는 자본 논리에 매이지 않고 재미와 취향을 따라 공들여 만든 잡지들 특유의 순전한 힘이 서려 있다.

독립잡지를 만나려면
그렇다면 독립잡지는 어디서 만나볼 수 있을까? 일단 홍대와 연남동 쪽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유어마인드, 헬로인디북스, 책방만일, 땡스북스, 초원서점, 북바이북 등의 독립서점에서 실로 다종다양한 잡지들을 만날 수 있다. 이중 유어마인드에서는 독립출판물 외에도 작은 규모로 생산된 천가방, 문구, 음반까지 접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유일의 음악서점인 초원서점에서는 음악 관련 책들을 찾을 수 있고, 북바이북에서는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 동네에 어떤 독립서점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어나더북스(anotherbooks.kr)를 참고하면 된다. 혹시 직접 나들이가 어렵다면 노말에이(normala.kr), 오키로미터(5kilomarket.com), 피큐알북스(storefarm.naver.com/pqrbooks) 등 온라인 독립서점을 이용해도 좋겠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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