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교육가회’ 김기석 대표

첫 만남이지만 그에게선 요것조것 궁금한 게 많았다.
Ki-Seok “Korbil” KIM. 명함을 받아들고는 ‘코빌’이란 이름이 우선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에선 그를 ‘코리아 빌 클린턴’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부리부리한 눈에, 키도 큰 데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까지….

이상한 국기 문양의 배지도 특별해 보인다.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주한 명예영사라고 했다. 그 나라의 국기를 배지로 달고 있었다. 문득 2002년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만들어준 히딩크 감독에게 우리가 준 ‘명예 한국인’ 칭호가 생각났다.
가족관계도 호감이 갔다. 그는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 장로의 사위이다.

중요한 그의 이력은 2013년 은퇴할 때까지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학자였고, 2007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교육 원조’를 하는 NGO ‘국경 없는 교육가회(Educators Without Borders, EWB)’를 만들었으며, 은퇴 후 이 일은 그의 본업이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부르키나파소에서 진행한 이 기구의 교육 원조 프로그램은 문맹 퇴치에 크게 기여하여 유엔으로부터 2014년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을 수상했다. 이 ‘국경 없는 교육가회’가 올해로 열 돌을 맞았다.
‘코르빌’ 김기석 대표를 만난 계기는 이 부분이다. 10년 동안 국제 교육 원조 NGO를 운영해온 그의 수고가 빛나 보였다.

✽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을 수상한 것은 ‘국경 없는 교육가회’의 프로그램이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의미겠지요?
- 맞아요. 이 상은 사실 우리 정부의 재원을 기반으로 유네스코가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첫 수상자를 낸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이나 한국 기관이 한 곳도 없었어요. 우리가 처음이에요. 그만큼 공정하다고 볼 수 있겠죠.

✽ ‘국경 없는 교육가회’의 문맹 퇴치 프로그램이 갖는 특징이라면?
- 우리는 문맹 퇴치와 빈곤 탈출 프로그램을 함께 가동합니다. 먼저 읽고 쓸 수 있는 문해(文解) 교육을 한 뒤, 이어 기술연수와 소액대출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유도하지요. 부르키나파소 5개 마을에서 이런 사업을 펼쳤고 그중 4개 마을이 좋은 결과를 거두었어요. 유엔이 그것을 평가해준 셈입니다. 문해 교육은 먼저 현지 부족어 교육을 하고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 교육을 합니다. 기술교육은 비누 만들기 등의 생활기술교육과 양계 콩재배 기술을 비롯해 트랙터 등의 농기구 활용 기술까지 다양합니다. 나아가 창업을 위한 경영교육과 소액대출 프로그램까지 진행하지요.

✽ 경제적인 분야를 포함한 교육 원조이군요. 이 융합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이 거둔 성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 우리가 마을에 들어가기 전 마을 사람들은 도로 표지판이 있어도 읽을 줄 몰랐어요. 심지어 정부가 에이즈 치료제를 구해서 주지만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해요. 그런데 문해 교육을 받고 글을 알게 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요.
가령 글을 몰라 호적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호적을 하고, 투표도 하고, 그러면서 차츰 시민의식도 생겨났죠. 여기에다 농업 기술을 익히고 창업을 위한 소액융자까지 받아서 돈을 벌게 되었어요. 우리 프로그램이 집중하는 건 주로 여성들인데, 이들이 남성권위주의가 팽배한 가정에서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가정문화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지요.
소액융자 프로그램 또한 매우 성공적이에요. 지난 5년간 소액대출금 회수율이 95%에 이르러요. 그러니까 한 번에 50달러, 100달러씩 빌려주는 대출금이 현재는 6만 달러까지 쌓여 600명 이상 수혜자가 된 셈이죠.

‘국경 없는 교육가회’가 부르키나파소에서 극빈 농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립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펼친 이 프로그램을 ‘가파(GAPA, Global Alliance for Poverty Alleviation) 프로젝트’로 명명했다. 이 이름은 우리 말 발음 ‘갚아’의 의미도 내포하는데, 이는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 ‘갚는’ 위치, 곧 주는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제 이 프로그램을 성공적인 한국형 원조 프로그램의 브랜드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부르키나파소 비정규교육진흥협회와 함께 수행하는데 문해 교육, 직업기술훈련, 소액대출 등 세 분야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모델이란 점이 그 특징인 셈이다. 특히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경기도 광명시의 지원을 받아 현지에 세종문해교실을 건립했고, 여기서 토착어 외에도 부르키나파소 공식 언어인 불어 문해 교육까지 추가했다. 결과도 좋아서 비정규교육분야의 성공사례로 아프리카는 물론 제3세계의 여러 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국경 없는 교육가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집니다.
- 길게 보면 15년 전 쯤, 그러니까 새 천 년을 맞으면서 국제교육계가 EFA 즉 ‘보편적인 교육(Education For All)’을 새로운 목표로 잡았어요. 그 후 유엔에서도 2015년까지 달성할 구체적 목표를 선언하면서 이 교육적인 부분을 목표에 포함했지요. 초등교육의 보편화와 교육에서의 양성평등 확보 등이 그것이에요. 그외 나머지 목표들 즉, 극심한 빈곤 퇴치라든가 에이즈 방지, 영아 사망률 최소화, 모성 건강 증진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교육의 역할은 필수적이죠. 그런데, 이런 목표를 정하기는 했는데 과연 극빈국가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의문이었죠. 이때 여러 국제기구 전문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빈곤탈출과 교육 발전 사례였어요.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식민 지배를 받았고, 전쟁을 치렀고, 그것도 모자라서 독재정치의 경험까지 겪었어요. 그런데 이런 악조건에서 우리는 교육을 발전시켰거든요.

✽ 정작 국내에서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말하는데 해외에선 우리 교육을 모델로 삼았군요.
- 외국 친구들이 교육학을 연구하는 저에게 ‘너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험이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너희는 네 나라 안에만 갇혀 있느냐?’라고 질타했어요. 그렇잖아요. OECD가 3년마다 아이들의 수리능력, 과학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측정하는데 한국이 핀란드와 함께 늘 최상위에 있거든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세계 지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부추겼어요. 유엔의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이 앞장서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저에게도 여러 차례 접촉이 왔고, 이런 제안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결과 ‘국경 없는 교육가회’가 출발한 것입니다.

실제로 ‘국경 없는 교육가회’는 가나와 우리나라를 비교했는데 1960년대에 크게 다르지 않던 양국의 교육 및 경제적 수준이 2000년대에 와서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그 원인을 ‘교육’으로 잡았고, 교육 원조를 통해 문맹 퇴치 및 빈곤 탈출, 인권 강화 등의 목적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이 전망은 국제기구의 인정을 받았고 부르키나파소에서 증명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국경 없는 교육가회’가 지난 10년 동안 흘린 땀의 결실이기도 했다.

✽ 학자로서 책상머리에 앉아 연구하고 강의실에서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그것을 펼쳐낸 셈이군요. 이런 문화가 흔하지는 않지요.
- 글쎄요. 저는 늘 배움과 삶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평등의 단초를 구조에서 보느냐, 사람에게서 보느냐의 문제 앞에서도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지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도 고아와 과부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 곧 구조적 문제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는 것 같아서 갈등이 심했고요.

✽ 모두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대표님은 학교에서 은퇴하신 뒤 오히려 더 많이 일하시고, 일의 내용도 훨씬 본질적인 데 몰두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년은퇴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어요.
- 은퇴 후의 일은 의무라기보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에요. 저의 경우 그건 나눔이죠. 은퇴 이전에는 임금노동으로 먹고 살지만 은퇴 이후에는 입에 풀칠하는 것 빼고는 ‘나누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고 봐요. 이를 위해 다양한 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은퇴 후의 후반기 인생 역시 중요한 우리의 인생이란 점을 인식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후반기 인생은 우리의 생각을 실제로 전파하는 데 쓰면 좋겠어요. 이런 일은 즐겁죠. 마치 등산을 하는 것 같아요.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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