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길 위에서 만나다 / 제주도 기독교순례길

제주도는 매우 독특한 교회의 역사를 지닌 섬이다. 선교사들이 아직 섬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조봉호 조사 등을 중심으로 제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이기풍 선교사 이전의 성도들이다. 여기에 제주 최초의 목사이자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 4·3사건 당시 공산주의자로 몰려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낸 ‘제주의 쉰들러’ 조남수 목사, 그리고 최근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서서평 선교사의 행적들까지, 제주도는 그야말로 한국 기독교역사의 또 다른 맥을 짚어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이 특별한 해의 여름에, 100년 전 제주의 첫 성도들이 품은 뜨겁고 순수한 ‘첫 사랑’의 흔적을 느끼고 새겨보는 일은 그야말로 기억할 만한 추억을 만들어줄 것 같다.

순종-순교-사명-화해
제주 기독교 순례길은 모두 네 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1코스의 출발은 애월읍 금성리 금성교회이다. 제주에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 이미 기도모임을 가진 교회이다. 금성리에서 귀덕리로 이어지는 길에 이도종 목사와 조봉호 조사의 생가가 있고, 처음 기도모임을 가진 장소도 있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한 애국지사 조봉호 조사는 물론 4‧3사건의 비극 속에서 순교한 이도종 목사와도 만나는 감동에 빠져들 수 있다.

1코스 ‘순종의 길’은 한림해안길을 따라 걸어서 한림교회와 협재교회로 이어지는 14.2km의 길이다.
2코스 ‘순교의 길’은 협재리에서 한경면 용수리와 조수리를 거쳐 이도종 목사의 순교 장소까지 이어진다.
3코스 ‘사명의 길’은 조수교회-용수저수지-순례자교회-용수교회-용수포구-당산봉-고산교회-노을해안도로-조남수 목사 공덕비까지의 21.4km 길이다. 걷기에 만만한 코스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용수저수지와 용수포구, 당산봉을 올라 석양과 함께 차귀도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그리고 4코스 ‘화해의 길’은 이도종 목사 순교터에서 대정교회-추사유배지입구-모슬봉-강병대교회-모슬포교회-조남수 목사 공덕비로 이어지는 11.3km 구간이다. 한국전쟁 당시 병사들의 훈련소로 사용되었던 강병대에 세워진 강병대교회는 모슬포 지역 첫 유치원인 샛별유치원이 시작된 곳이고, 지역주민을 위해 야간중학교가 운영되기도 했다. 대정교회는 이도종 목사의 순교성지이다.
이 가운데 2, 3, 4코스는 모두 올레길을 통과하거나 올레길 일부와 겹친다.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올레길 위에 성도의 영성이 겹쳐 그야말로 생명력을 가진 순례길이 된 셈이다.

‘보라색 물고기’ 지시를 따라가라
순례길을 인도하는 ‘보라색 물고기’의 지시를 따라가면 제주의 토속적 풍경을 지나가게 되어 그 땅에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도 마음에 새겨볼 수 있다.
가끔 좋은 가이드와도 만나는데 조수교회의 김정기 목사는 순례자들과 만나 제주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일에 거의 모든 일과를 사용하는 분이다. 이런 분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두고 걸으면 더욱 유익하다.
기독교 순례길이 생기자 천주교 순례길과 불교 순례길이 그 뒤를 이었는데, 이로써 제주는 종교 순례길을 가진 특별한 섬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다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를 자랑하는 섬인 셈이다.

길은 공공의 영역이어서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한 사람이 가고, 다음 사람이 감으로써 길은 만들어진다. 길에는 먼저 걸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성장에만 급급했던 우리의 걸음을 성찰하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특히 제주의 기독교 순례길은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또 꾸준히 믿음의 씨앗을 뿌린 신앙의 선진들을 만나는 길이어서 더욱 유익하다.
이제 떠나보자. 제주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내 신앙의 첫 사랑도 되살려보자. 순례자의 노래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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