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 따라가다 길을 잃었네”
(‘어느 5월에’ 좋은날풍경)


푸르던 5월 어느 숲에서 아카시아 향기를 따라가다 ‘여기가 어딘가’ 헤매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지게 된 한 줄짜리 노래다. ‘아름다움에 길을 잃을 줄 모른다면 이미 길 잃은 영혼이 아닐까?’ 이 생각은 날이 갈수록 짙어진다. 너무 큰 것은 볼 수 없고, 너무 큰 소리는 들을 수 없다던 말처럼 인생은 모르리라, 세상이라는 신의 선물을.
동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연에서 오지 않았을까.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마음 자체가 아닐까. 그 아름다움에 길을 잃는다는 건 신의 가슴으로 난 꽃길을 걷는 것이라 우기고 싶다.

꽃에게 눈길을 잃고
마음을 빼앗겼더니
걱정이, 근심이 길을 잃더라
햐! 꽃이 마음을 구원하네
발아래, 눈앞에, 머리위에
온통 꽃천지라
사람아,
꽃에게서 마음을 구원 받으라


자연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산책이란, 그 마음을 읽는 일이겠다. 그래서 ‘자연을 보다’를 ‘산책을 읽다’로 표현해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 자연은 하나님 생각의 결과물이라 해석을 해 본다면 성경을 읽을 때 산책도 같이 읽을 일이다. 성경을 한마디로 줄여 본다면 ‘창조주는 사랑이시라’가 아닐까. 누구든 꽃과 나무를 보고, 별을 보고 자연을 들여다본다면 아마도 고백은 동일하리라.
‘신은 사랑이 아닐 수 없구나!’

별은 천상의 마음
꽃은 지상의 마음
우릴 그 사이에 두신 그분의 마음
(‘좋은날풍경’ 좋은날풍경)


나는 한밤에 산길에서 커피를 판다. 컵에 물을 따라두면 얼 만큼 추웠던 지난 겨울날, 평소에는 보고도 보이지 않았던 나무가 비로소 보였다.
‘이런 추위에도 한결같이 서 있었구나.’
새삼 ‘눈은 있으나 망울이 없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이었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새봄이 와 드디어 그 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 나는 태초 이후로 처음 꽃을 보는 것 같았다. 겨울이 새롭게 보였다. 봄이 겨울을 뚫고 오는 게 아니라, 겨울은 봄의 엄마가 아니었을까….

가을 다음 봄이었다면
이런 풍경 있었을까
겨울은 봄의 엄마였을까
엄마… 엄마 그리는 봄의 눈빛
눈물겹지 않은가
눈부시지 않은가
(‘봄날의 서정’ 좋은날풍경)


한 소녀가 있었다. 산골소녀로 살다 도시로 이사 왔을 때 그 집에 ‘개조심’이라 쓰여 있었다. 소녀가 살던 집에 예전엔 큰 개가 살았단다. 동네 아이들이 그 소녀를 약 올리기 시작했다. “개집애야! 개집애야! 개집에 사는 개집애야!” 그 소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단다. 하루가 멀다고 술에 취한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어린 소녀의 마음에도 시퍼런 멍이 들어갔다. 그 소녀가 숙녀가 되고 하나님을 만났다. 세월이 지나 목회자와 결혼해 사모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모를 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녀의 얼굴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 얼굴에 천국햇살 같은 미소가 언제나였기 때문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길 외엔
더 깊이 사랑하는 길 외엔
다른 어떤 길도 없네
다른 어떤 길도 없네
(‘다른 어떤 길도 없네’ 좋은날풍경)


봄날은 ‘보라는 날’이다. 꽃잎 한 장, 나뭇잎 한 장. 살아 춤추는 천상의 시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지상에 유배를 왔든, 소풍을 왔든 분명한 건, 우리 사는 별이 ‘꽃피는 별’이라는 사실이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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