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악착같음의 대명사인 야곱을 속여 먹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이다. 라반은 딸 라헬을 조건으로 14년간, 자신의 양떼를 위해 6년을 추가로 야곱을 무급으로 부려 먹는다(창세기 31:41). 참다못한 야곱이 분가를 결심하고 품삯으로 요구한 것이 라반의 양과 염소 중에 얼룩지고 점 박힌 것이었다. 대부분의 양은 희고, 염소는 검다는 것을 알고 있는 라반은 그 약속을 승인하는 한편, 그날 바로 야곱 몰래 얼마 되지도 않는 얼룩진 가축들마저 가려서 사흘길이나 멀리 보내버리는 교활함을 보인다. 이때 야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을 행한다. 야곱은 튼튼한 양들이 교미할 때 나무껍질을 벗겨 얼룩무늬가 생긴 나뭇가지를 보게 했는데, 놀랍게도 얼룩진 새끼들이 태어난다(창세기 30:37~39).

성경에는 의학적, 과학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난제들이 많은데 이 구절도 그렇다. 생물학적으로 양은 흰색이 우성이고, 염소는 검은 색이 우성이라 얼룩진 것이 태어나려면 얼룩무늬의 열성 유전자를 가진 것들이 정확하게 교미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지금도 중동 땅에서 얼룩무늬의 양과 염소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야곱이 멘델의 유전법칙을 알았을 리도 만무하다. 멘델은 야곱 이후 약 4천년 후 나타난 인물이고, 야곱이 취한 방법은 멘델의 유전법칙과는 전혀 상관 없는 황당무계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근동의 목동들 사이에 미신처럼 내려오는 비법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비법만 믿고 야곱이 라반과 약속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야곱은 꿈에 얼룩진 가축이 태어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고(창세기 31:10~13), 이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하셨음도 고백한다(창세기 31:9). 얼룩양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꿈의 계시를 확실한 담보로 하면서, 악착같았던 야곱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만히 기다리기 보다는 뭐라도 하면서 축복을 갈구하기 위해 그런 의식을 행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런 야곱을 하나님도 이해하셨던 것 같다(창세기 31:12).

사실 야곱의 행동은 양들이 교미시 얼룩무늬의 나뭇가지를 보면 새끼가 얼룩진 것이 나온다는 생각인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외부 환경에 의해서 유전자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내용이 요즘 다시 부상하는 유전이론인 ‘후성 유전’인데, 대표적인 진화학자 최재천 교수가 후성 유전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것이 바로 ‘야곱의 얼룩양’이다. 이를테면 태교 같은 것도 유전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진화론자가 성경을 예로 든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다. 2016년 중국 신장축목과학원 교수팀에서도 양의 털 색깔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DNA)를 유전자 가위(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자를 수 있는 단백질 효소)로 편집해서 얼룩무늬 양을 탄생하게 했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하나님이 이 방법을 써서 야곱을 도와 주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인간들이 유전자를 조작해 어슴푸레 하나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이 어디 이뿐일까 한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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