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문에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창운 교수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웨덴과 한국을 비교한 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웨덴은 독립사회이고, 한국은 의존사회라는 취지였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결혼과 함께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부부도 서로 사랑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으며, 노인은 지팡이에 의존할지언정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독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삶을 산답니다. 반면에 한국사회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삶의 근원이자 모든 것입니다. 부모에 따라 삶이 좌우되다가 늙어서는 자식에게 봉양 받아야 합니다. 결국 글쓴이의 결론은 한국사회도 스웨덴처럼 독립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고로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약하다는 뜻이요 비굴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받을 부담을 남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욥기>는 ‘누군가에게 얹혀산다는 것은 거미줄에 걸려 잡아먹히는 것’이라 했고,
<잠언>은 ‘의존한다는 것은 부서진 이요 부러진 다리와 같아서 스스로 서지 못하며, 결국에는 상한 갈대 같이 쓰러져 없어질 존재’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국가의 경우 다른 나라에 의존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멸망을 가져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권력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이 함부로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인간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특히 신앙을 갖게 되고,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면 수도 없이 대하는 것이 ‘의존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다.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의지의 종교다. 이 의지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그런 의지(Will)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대려는 그런 의지(dependence)이다.”
히브리어로 ‘바타흐’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매달린다’, ‘들어붙다’, ‘바싹 따라가다’, ‘들러붙어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얹혀산다’로 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철저한 ‘의존의 신앙’을 설파합니다.
문제는 의존의 대상입니다. 특히 의존할 대상과 의존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어떻게 분별해 내느냐의 사안입니다. 시편 115편을 보면, 의존하지 못할 대상을 두 가지 보여줍니다. 이른바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즉 ‘물질주의’와 ‘인공주의’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든 것은 사용할 대상이지 의존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기를 목욕시킬 때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얼굴을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소서”
입을 닦아주면서,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복된 말이 되게 하소서”
머리를 감아주면서, “이 아이의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게 하소서”
손을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가슴을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가슴에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품게 하소서”
배를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오장육부가 건강하여 튼튼하게 하소서”
다리를 씻어주면서,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엉덩이를 씻어주면서, “교만한 자리에 앉게 마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소서”
등과 허리를 씻어주면서,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이 기도문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기대고 살아야 할 대상을 분명히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한 분을 의존하면 만물에서 자유롭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의존해야만 눈에 보이는 사람과 피조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릴 수 있음을 유대인들은 알았습니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 박사가 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그는 의존의 정신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해방은 신에게 의존함으로써 성취된다. 신께 의존한다는 것은 인간과 사물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신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때만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식하고 모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대상들을 의존하는 시대에 삽니다. 사람은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며, 물질과 권력과 명예는 사용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들을 의존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종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립니다. 여기 저기 의지할 데가 많은 우리의 영혼은 늘 피곤해 하고 마음이 편치 않으며 만사가 두렵습니다. 그러나 참된 독립은 보이지 않는 한 분의 절대자에게만 종이 되려는 삶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만물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한 분을 의존해야 합니다. 만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면 한 분만 두려워하면 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참된 삶의 지혜입니다.

김상기
연세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공부와 목회를 한 후, 2010년 귀국하여 남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지금은 새사람교회 책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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