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마중하라-용두동교회 문종수 장로

과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문종수 장로(77·용두동감리교회 원로장로)는 최근 자신의 이름이 신문기사에 오르내렸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을 지냈던 문종수 장로를 청렴하고 강직한 기독교인으로 기억해 언론에 회자되었는데 말이다.
“저희 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전 스마트폰도 안 씁니다. 중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뺏길 것 같아 일절 안 해요.”
탁자 위 꽃들로 인해 향기가 집안에 가득 했고, 거실 한 켠에는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지난 토요일에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우리 회원이 가져온 꽃이에요. 향이 참 좋지요?”

강원도에서의 새로운 삶
문종수 장로를 찾아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 아니라 은퇴 이후 살아온 그의 삶 때문이었다.
부부가 함께 시신기증을 결정하고, 자신의 소유를 늘리지 않고 나누며, 지방에 내려가 시골교회를 섬기면서 시골청년들과 독서모임을 갖고, 자신의 책을 기증하여 도서관을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 지금은 자녀들 가까이에서 투병중인 아내를 돌보면서도 독서모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강원도 속초에 내려갔어요. 거기서 물치감리교회를 만나고, 거기 청년들을 만났지요.”
“제 책 5천권과 친구들 책 5천권을 기증했어요. 지금도 지방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도서관이라고 들었어요. 좋은 책들이 많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있는 시골교회에 무슨 도서관이냐고, 무슨 독서모임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리더십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원래부터 청년들과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마음을 갖고 있었던 문 장로는 ‘단 한 사람의 인생만 바뀐다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치감리교회 비전센터를 세울 때 도서관 마련에 힘을 쏟았고, 지인들을 초청해 매월 강연을 열기도 했다.

용머리 독서회를 이끌며
문 장로가 이끄는 독서회는 요즘에도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모임을 갖는다.
“민영진 박사님과 같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데 회원이 45명 정도 되고, 우리 교회 교인뿐 아니라 다른 교회 교인들도 오세요. 연령대도 청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고 그 중에는 물치감리교회 출신 청년도 있어요. ”
1년 치 독서계획을 미리 세우고 진행하는데 주제가 참 다양하다. 예를 들어 올해 1월에는 ‘이 시대에 왜 다시 선비인가’, 2월 ‘종교개혁의 완성을 향하여’, 3월 ‘나이듦도 알고, 배워야’ 등이다.
주제에 따라 그달 담당자가 주제발표를 한 후 토론을 벌이는데, 모임을 주관하는 문 장로가 준비하는 자료집이 대단하다. 다음 달에 꼭 읽어야 할 책과 더 읽으면 좋은 책을 나누어 손글씨로 정리하여, 관련해서 읽으면 좋을 자료들에 꼼꼼히 밑줄까지 그어 복사하여 나누어준다.
“모두 바쁘잖아요. 혹시 관련도서를 다 읽고 오지 못하면 자료집에 있는 줄친 부분만이라도 읽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 이들의 수준은 이제 상당하다. 처음에는 엄마는 몰라도 된다며 자녀들이 대화에 껴주지도 않았던 주부들이 독서회에서 책을 읽고 토론을 나눈 후 모두 놀랄 정도의 수준이 된 것이다.

“100세 시대잖아요. 전반전 뿐 아니라 후반전만 해도 2, 3번 삶의 주제가 바뀔 수 있어요. 그것을 혼자 겪게 두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것을 준비시켜줘야 합니다. 책을 함께 읽으며 그 삶의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 것인가 준비하는 것이지요. 또한 먼저 은퇴한 사람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은퇴하면 가정형편이나 여유를 봐서 몇 년이고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문 장로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은퇴라는 경계선보다는 결국 인생을 통해 계속해서 펼쳐나가는 ‘뜻’이 중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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