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마중하라-고려인 선교하는 윤영애 선교사

“아마 20년이 더 된 것 같아요. 여호수아서 강해를 들을 때 85세 된 갈렙이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하는 구절이 와 닿았어요. 늙고 젊음의 기준을 전 ‘비전이 있는가, 없는가’에 두었지요. 비전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자신이 젊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 손을 번쩍 들었어요. 주위 사람들이 크게 웃었지만 제게는 ‘85세의 젊은이’ 갈렙이 큰 영향을 미친 거죠.”

그래서일까, 윤영애 선교사(75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윤 선교사가 ‘비전’이란 말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두 사람. 바로 아프리카 선교사 슈바이처와 <상록수>의 농촌계몽가 채영신(최용신)이다. 여고생 나이에 알게 된 두 ‘젊은이’의 비전은 윤 선교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고황경 선생이 ‘또 다른 채영신’을 꿈꾸며 그들을 통해 가난을 벗고 품위 있는 나라를 이루겠다고 시작한 학교, 서울여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농촌지도사가 되어 그야말로 ‘채영신의 삶’을 살았고, 또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를 이끌었으며, 모교인 서울여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회갑을 맞은 지난 2002년 그녀에게 새로운 비전이 주어졌다. 한민족 역사 속에서 잊혀져 온 러시아 동포들, 곧 고려인들의 슬픈 역사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기근을 피해서, 또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운동가들이 본토를 떠나 살던 곳이 연해주였다. 이곳에 살던 17만 명의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하루아침에 집과 고향을 버리고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갈대밭으로 내몰려야 했다. 배고픔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땅굴을 파고 겨울의 추운 눈보라를 견디며 황무지를 개간했다.
정치적 탄압속에서도 그들은 자녀들을 학문, 문화, 스포츠 등 각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들로 키워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살아온 고려인들에게 조국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아픔이 그대로 전이되어 터질 듯한 가슴으로 윤 선교사는 하나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은퇴한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거기 가서 사는 것 이외에는…” 하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선교명을 ‘갈렙 윤’으로 바꾼 뒤 교회의 파송을 받아 고려인들 속으로 들어갔다.

갈렙 같은 젊은 선생님
“선교지에 가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살아오는 세월 동안 많은 훈련을 시켰더군요. 고아와 거지와 한센병환자를 돌보신 아버지 곁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고, 많은 고아들과 피난살이를 하면서 배고픔을 견뎠고, 농촌지도사로 살면서 돼지비계와 소금 간을 한 돼지비계국도 먹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러시아에서 고려인들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셈이죠. 게다가 선교학과 목회학을 공부했고, 교회연합활동도 하면서 선교의 틀도 세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복지 문화 교육 등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선교를 목적에 두었고, 이 목적을 이루고자 자립을 지향하고 공동체 곧 교회와 고려인 사회, 나아가 러시아인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어요. 이런 건 나이 든 선교사의 장점일 거예요.”
볼고그라드. 그 낯선 곳에서 윤 선교사는 ‘슈바이처’이거나 ‘채영신’이었다. 한글반을 개설했고, 사물놀이와 난타, 한국의 춤과 음식과 놀이를 가르쳤다. 이미 그녀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그곳인들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무리 달라도 여전히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한글반 아이들과 견학을 한번 가더라도 그녀가 준비하는 여정은 남달랐다.
그런 할머니, 아니 갈렙 같은 ‘젊은 선생님’을 보면서 선생님을 대접할 줄 모르는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대접했다. 한글반 아이들의 연주는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고, 고려인들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였던 아이들,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던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많았으나 돌아볼수록 감사할 일들이 많아요. 무엇보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만 붙잡을 수 있었으니 은혜죠. 무엇보다 올해 일흔다섯인데 하나님께서 저를 갈렙처럼 사용하고 계시고, 늙어서도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올곧음을 나타내라 하시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더 있을까요?”

그녀는 젊었을 때 아이 키우는 데 집중하고 중년에 교회와 사회활동을 하느라 바빴다. 언제나 비전을 향해 달리느라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노년이 더 없이 행복하고 여유롭다고 고백한다. 혈기도 죽고 욕심도 줄고, 그래서 주어진 일에 감사가 넘친다고.
천천히 걸어도 하나님의 일을 조용히 해나갈 수 있다.

하나님이 파송하신다
그녀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선교사 1, 2기는 교회 파송으로 선교사역을 했으나 지난 2014년부터 3기 선교사 이력에는 ‘하나님 파송’이라 썼다. 이제부터는 자비량선교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다짐이다.
“제가 받은 복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내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건강하다면 선교사의 일을 멈출 수가 없지요.
우리 부부가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기로 하고 14년 살던 아파트를 판 뒤 전철역 쪽으로 이사를 오면서 설렜어요. 포장이사가 아닌 일반 이사를 했기에 둘이서 짐을 싸고 풀었지요. 그런데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한 달 동안 짐을 싸고 한 달 동안 짐을 풀면서 몸살 한 번 안 났는데, 아마도 여유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서였을 거예요. 그러면서 갈렙을 떠올렸어요. 갈렙도 아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얻은 여유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지 않았을까요?”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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