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마중하라-어떻게 삶의 피날레를 만들어 갈까

한낮의 햇살이 지나는 나른한 오후, 예상치 못한 좋은 저녁스케줄이 생기면 얼마나 생기가 도는가.
살아가며 언젠가 자유로운 날갯짓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눈에 띄게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우리 인생에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재능이 어느 날 새롭게 표출되며, 인생 2모작의 성취를 맛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

상처받은 내면아이 가족심리치료 전문가이자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저자 존 브래드쇼는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 안에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어 시시각각 에너지를 빼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어떤 상황이 올 때마다 잡아당김으로, 자유롭고 진취적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문득 과잉반응을 나타내 필요 이상 화를 내어 상대방을 난감하게 하거나, 방어적이 되어 일의 진전을 어렵게 한다. 또한 무의식적 퇴행이 일어나 물질이나 먹을 것 등에 집착하는 유치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에 남아있는 상처를 돌아보며 억압되고 눌린 부분을 풀어낼 때 예상 못한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가 가난한 흑인 여성에서 미국 방송인으로서 최고의 명성과 부와 인기, 존경을 얻는 자리에까지 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 중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토크쇼를 진행하던 중 성폭행 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다가 함께 울며 자신의 경험담을 즉석에서 쏟아 놓은 일이다. 이 일로 오프라 윈프리는 성폭력 피해자는 물론 삶의 상처를 지닌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 안에 ‘수치심’으로 묶여 있던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풀어놓음으로써 자유로운 삶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 일 이후 그녀는 위로와 공감의 토크쇼 진행자를 넘어서 최고의 기부자로 존경받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었다.

아픔을 드러내는 것, 새로움의 시작
어린 시절의 ‘감춰진 상처’는 마음속에 ‘미해결된 과제’로 남아 불편한 성격을 갖게 하는데, 이에 대해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는 “외롭고 공포에 눌린 슬픈 아이를 그냥 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상처의 그림자들은 우리를 신경증적으로 예민하게 만들거나 성격 장애를 일으켜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하기 때문에, 삶이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뒤로 잡아당기는 힘’, 바로 ‘수치심’을 벗는 길이 오프라 윈프리처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신앙에 깊숙이 들어가는 길목, 하나님 앞에서 과거를 다 토해내는 것과도 연결되지만, 마음 안에 있는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돌아보고 보듬는 작업이 더해질 때 작은 틈새로 새어나가는 에너지까지 막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처는 오직 ‘슬퍼함’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브래드쇼는 말한다.
그러면 자기를 돌아보는 이러한 과정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정신적으로 10대나 그 이하 수준에 머문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상상해보자. 존 브래드쇼는 자신이 바로 그런 부모에게서 자랐다고 고백하며, 성인남자와 성인여자 안에 각각 4살 어린아이가 있음을 자신의 책표지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이런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인 자신이 내면 아이를 돌아볼 때 적당히 머리로만 판단해 새롭고 자유롭게 되는 일이 지연되고 늘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를 넣기까지
이렇게 부모 자신이 치유되지 못한 사람으로 아이를 낳았다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미루어 짐작된다. 발가벗은 아이로 세상에 나왔을 때 ‘딸이라고, 예상안한 아이라고, 상황이 안 좋아서’ 부모는 제대로 반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다시 그려본다. 주께서 내 안의 어린아이를 받아 감싸 안으시며 축복하신다.

“잘 왔다. 기다렸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웃으시며 만져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모들은 바쁘다고 내 필요를 무시했지만 주님은 이제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신다. 어떤 이는 어릴 적에 하고 싶었던 말을 왼손으로(아이 글씨체를 연상하며 부모에게 글쓰는 과제) 쓴 글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필요’임을 보며 따스한 애정이나 보살핌이 절실했던 시간들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해 유치원 시절, 초등생, 학창 시절의 모호한 장면들을 재구성해 나간다.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간 낙타처럼 짐 지고 살고, 사자처럼 분노를 품고 있다가 이제 다시 내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경이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천천히 얼마의 시간을 들여 수치심으로 얼룩진 그림자를 내놓으며 부모의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를 넣고 나면 아이처럼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사랑하며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앞날에 희망을 갖는 자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 내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자신감도 들게 된다.
성경에도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복음 18장 3절)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어린아이 같이 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 같음’은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아이 같음(childlikeness)은 경이로움과 용기, 자발성, 창조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유치함(childish)이 이기적이고 작은 것에 매달리는 모습인 것에 비해 아이 같음은 창조시 모습을 찾는 것이다.

수치심은 상처의 대표 감정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데 덧붙여 알아두면 좋은 것은 ‘수치심’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생명증진센터에서는 수치심을 깊이 다룬다.
수치심은 모든 감정을 묶어 화나거나 우울하거나 두렵거나 기쁠 때조차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상처와 가장 밀접하게 이어진다. 수치심이 상황을 멈추게 하거나 제한해 즐거움, 흥미로움, 놀라움도 막아 점점 무감각해지게 한다. 어린 시절 이런 상황 속에서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 무의식적인 연령 퇴행이 일어나 격에 맞지 않는 모습을 하게 되며 반복하려는 충동으로 중독 성향도 띄게 된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부분의 인간은 조용히 절망하며 살아간다”고 했지만 그러나 마음으로 보듬는 내면 아이의 회복과 후원 작업이 이루어지면 놀라운 창조적인 재생이 일어난다.

이렇게 내면의 아이를 돌아보는 일은 보통 발달단계 중 과도기적인 어려움이 나타나는 40세 즈음의 중년기에 일어나는데, 이때 일과 인간관계, 영성에 관한 정립을 잘해나가면 노년기로 진입할 때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맞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내면아이가 치유되어 자유로운 창조성을 가진 아이로 드러나며 삶이 풍성해지고 천국의 희망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TIP
● 부모가 ‘지금이 좋아. 자라지 마라’하는 말은 부모가 잃어버린 자기애적 욕구를 채우려는 말.
● 의무감에 매인 엄마로 인해 자녀는 즐거울 때나 좋아하는 행동을 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 부부 중 한 사람에게 자녀가 배우자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될 때 정서적 학대가 존재한다.
● 신뢰하는 데에 두려움이 있고 관계 형성에 고립감이 있는 것은 오래된 수치심의 결과다.
● 부모를 이상화하는 아이는 잘못된 일은 자신 때문이라고 여겨 늘 삶의 짐이 무겁다.
● 사고로 놀라거나 다쳤을 때 부모가 화를 내는 경우, 아이는 외롭고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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