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 정보화시대라 하는 3차 산업혁명, 그리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 실제 생활과 연결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세상을 말합니다.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를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이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습니다. TV와 라디오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기존 방송 단말기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고, 외출 중에도 밥솥이나 냉장고 같은 사소한 살림 가전부터, 냉난방과 보안 같은 집안 시스템 대부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화 <공각기동대>가 처음 세상에 나온 1989년, 그것이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된 1995년은 일반 실생활에 컴퓨터가 이제 막 보급됨과 동시에 네트워크 세상을 향한 첫걸음마를 떼던 시기였습니다. 네트워크 속에서 인공의 인격체가 활동한다는 개념은 그저 먼 이야기 같았지요. 그런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 4차 산업혁명과 마주한 우린 바로 그런 세상 문턱에 서 있습니다.
바둑은 무한 난수표에 가까운 영역이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으나, 이세돌 9단이 알파고(AlphaGo)라는 인공지능 앞에 무릎을 꿇은 게 작년 이맘때입니다. 택배 업무를 드론이 하고, 회계 업무를 컴퓨터가 대신하는 등, 인간의 신체를 기계가, 두뇌를 인공지능이 대체해 나가고 있지요. 점점 자동화·무인화되어가는 ‘스마트’한 세상이 열린 겁니다.

차이가 모호해진 세계
<공각기동대>는 그런 세상이 극단적으로 진화되어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사이보그 신체에 인간 의식이 전자두뇌 상태로 입력된 주인공이 나옵니다. 영어 원제 <Ghost in the Shell>은 이 상황을 보다 직접 말하지요. 인공적인 껍질(shell) 속에 들어 있는 영혼(ghost). 작품 속 등장인물의 두뇌는 언제든지 인터넷에 접속해 타인과 소통하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컴퓨터 작업하듯 그 기억을 임의로 조작 혹은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몸은 로봇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육체보다 강력하고, 인간의 두뇌보다 빠르고 정확합니다.
그런 그를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순수하게’ 인간이었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사악한 조직과의 사투는 그저 부수적인 곁가지이고, 등장인물의 정체성 찾기가 주요 이슈인 작품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이야기가 먼 미래의 우화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만 하더라도, 스마트폰과 거의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직접적인 설명보다 인터넷 검색을 더 신뢰하고, 머릿속 지름길보다 내비게이션을 더 믿고 의지합니다. 어느덧 우리는 기계에 중독되어 이미 기계와 혼연일체의 삶을 살고 있지요.
실제로 대학 교양강의 시간 중, 자신의 정체성을 간략히 표현하라는 과제를 내주었을 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제출하는 것은 자신의 컴퓨터 바탕화면이나 즐겨찾기 목록, 혹은 스마트폰 화면 캡처 사진입니다.
‘내’가 컴퓨터와 휴대폰이고, 컴퓨터와 휴대폰이 곧 ‘나’인 세상이지요.
<공각기동대>의 인물들이 네트워크에서 배회하듯, 현대인들 또한 마치 유목민과 같이 SNS와 인터넷 곳곳을 떠돕니다. 즉,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이메일과 아이디로 대표되는 인터넷상의 정체성을 하나 이상 갖고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가상의 공간에서 더욱더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즉 거기에서 표출하는 생각이 자신의 실제 욕망에 훨씬 더 가깝지요. 이제 가상의 ‘나’가 실제의 ‘나’를 지배하는 형국입니다.

인간성 말살에 대한 경고
기계와 미디어의 발달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 주었습니다. 더 다양한 지식을 쌓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실제적 관계와 신체, 그리고 감각을 퇴화시켰습니다. 그래서 무인도에 갇히더라도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요즘 현대인입니다. 기계와 미디어의 지배자가 아니라, 어느덧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이지요.
다시 작품으로 돌아갑니다. <공각기동대>는 도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구화 되어 버린 인간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입니다. 이는 더 이상 사용가치가 아닌, 금전적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받는 상업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성 말살에 대한 경고와도 같습니다. 가상(가짜)이 실제(진짜)를 지배하듯, 사람 그 자체보다,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차를 타고, 어디에 사느냐로 평가받는 사회. 한마디로 물화(物化) 되어버린 현대인에 대한 우화인 셈이지요.

임택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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