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79년,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가 정예군 2만5천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 전단(戰團)을 이끌고 로마를 침공한다. 강력했던 피루스의 군대는 짧은 시간에 로마의 군사 요충지인 헤라클레아와 아스쿨룸 전투에서 승리를 한다. 로마를 상대로 거두기 쉽지 않은 2번의 승리이다.
그러나 승리 이후 오히려 피루스는 크게 절망한다. 이 2번의 승리를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代價)가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다. 피루스의 자랑이었던 코끼리 전단의 20마리가 다 죽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군사 2만을 잃는다. 이때 피루스는 “이런 승리를 또 한 번 거두었다간 우리가 망할 것이다”라는 탄식을 남긴다. 이후 ‘이겨도 패배 같은 승리’를 ‘피루스의 승리’라고 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하나, 그것은 ‘이겨야만 이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승리만 할 수 있다면 악(惡)조차 기꺼이 수단으로 선택한다. 이런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패배한 사람은 아름답지 않지만, 패배를 ‘선택’한 사람은 아름답다”는 심오한 철학이다.
아브라함이 가장 돋보였던 순간, 그것은 이삭을 얻기 위해 기다린 ‘25년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작은 목초지를 놓고 갈등하는 자신의 목자와 롯의 목자를 중재하기 위하여 탐욕스런 롯에게 조차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기꺼이 ‘패배’를 선택할 때였다.
그렇다. 패배라고 다 같은 패배가 아니다. 패배에도 질(質)과 격(格)이 있다. 곧 승리할 수 있음에도 기꺼이 선택한 패배,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승리’보다 훨씬 우월하다. 이 시대의 사람들, 이기기 위해 질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을 잃고 사는지 모른다. 승자가 되려는 지나친 다툼, 그것은 서로의 삶이 황폐와 폐허가 되는 전쟁, 곧 모두가 패자가 되는 ‘소모전(消耗戰)’이다.
그러니 그대여, 정말 ‘중요한 싸움’이 아니라면 승리에 집착하지 말라. 때로는 모두를 위해 ‘품위 있는 패배’를 선택하라. 훗날 역사는 그대를 ‘승자’로 기록할 것이다. 그렇다. 어떤 승리는 ‘패배의 지위’를, 어떤 패배는 ‘승리의 지위’를 갖는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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