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배려한다는 것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과 성장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 신학교 입학시험에 나올 법한 이 문제에 대해 당신이라면 어떤 답을 쓸 것인가?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대답할 테고, 어떤 사람은 ‘선교사들의 선교헌신’이라 말할지 모르고, ‘한국인의 종교성’이라 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은 이런 저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두드러진 비결, 또는 우리가 몰랐던 감춰진 힘이 있는데, 바로 ‘배려하는 전도자’ 역할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권서’의 역사이다.

권서의 역사
우리나라에 신교가 처음 들어올 무렵, 그러니까 19세기가 저물고 20세기가 시작되던 그때 한반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성경책을 팔던 ‘권서’들이 있었다. 이들은 핍박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순교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야말로 ‘게릴라’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 비로소 선교사들이 가서 교회를 조직했다. 100년을 넘는 많은 교회들 대부분이 이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권서는 아무나 될 수 없었다. 권서가 되려면 꽤 까다로운 관문을 거쳐야 했는데, 먼저 담당 목사의 추천서를 받아야 했다. 초기의 담당 목사는 주로 선교사들이었으며, 성서공회가 담당 목사로부터 듣고자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그의 기독교적 인격(Christian Character)은 어떠한가?
둘째, 이 특별한 (권서의) 업무에 대한 그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


권서가 단순히 성경을 판매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성서공회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권서가 지녀야 할 신앙의 인품을 무엇보다 중요히 여겼다. 구춘경이라는 권서가 남긴 기록을 보면 <권서가 지녀야 할 덕목 10가지>가 나온다.

1. 그들이 파는 책이 하나님의 묵시로 된 성경이며, 세상 사람이 책을 사서 보고 구주 예수를 믿어 구원과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먼저 알아야 하고,
2. 겸손한 자세로써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3. 온유한 말과 화평한 뜻으로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파할 것이며,
4. 핍박을 받더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항상 외울 것이며,
5. 숙식할 때에 교우나 외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식비를 넉넉하게 갚을 것이며,
6. 가난한 사람에게는 책을 외상으로 주거나 거저 줄 것이며,
7. 성서공회가 정한 법대로 책값을 받고 가감하지 말 것이며,
8. 책을 가지고 괴로움과 즐거움, 귀하고 천한 이를 각기 처지대로 만나는 대로 복음을 전할 것이며,
9. 찬송의 곡조를 공부하여 좋은 소리로 찬송하여 사람이 많이 모이도록 하여 전도할 것이며,
10. 책값 받는 것과 목사에게 책값 갚는 것을 소상하게 할 것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처음 만난 복음 전하는 자들의 됨됨이가 이러하였다. 적어도 이런 인품을 지니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게으르다”는 평판을 받는 권서가 없지 않았으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권서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활동한 권서들보다 좋은 평판을 얻었고, 초기 한국 교회를 이끈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권서로 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전도자들의 마음씨는 곧 성도들의 마음씨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10가지 덕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중 예닐곱이 다름 아닌 ‘배려’의 덕목이다. ‘배려’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가 그리스도인들의 ‘대표 마음씨’라고 여겨지던 그때, 이 나라 교회의 100년을 내다볼 큰 나무의 뿌리가 튼실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록 짧고 얕은 지식이지만 내가 본 우리 교회사는 이 튼실한 뿌리에 힘입어 그 후 100년의 성장이 가능했음을 증언한다.
반대로 이 나라 그리스도인들이 배려라는 ‘대표 마음씨’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으로 전락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다름 아닌, 누군가를 배려하기보다 자기를 과시하고자 타인을 폄훼하고 있지 않은가.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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