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어머니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다 해줄 텐데 그만두세요. 그러다 몸 상해요.”
“내 짐인데 내가 정리한 뒤에 맡기더라도 맡겨야지.”
어머니는 이사가 결정된 뒤로 혼자서 이사 준비를 하셨다. 이른바 ‘독거노인’이시니 당신의 짐 정리를 누가 나서서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서랍 하나하나를 비우고 가져갈 것들은 다시 비닐에 담아서 서랍을 채웠다. 장롱과 벽장도 그렇게 정리했다. 싱크대는 그릇을 꺼낸 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종이를 깐 뒤 그릇들을 올려두었다. 창고에서는 오래 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오래 고민한 뒤 버릴 것을 골라냈다. 그러나 버릴 게 별로 없었던지 짐의 양은 줄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군에서 입었던 군복까지 들고 다니시는 분이다.
또한 옥상에 심어두고 기르신 채소들도 이웃에게 줄 것과, 뽑아서 버릴 것과, 가져갈 것들을 구분하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처음 하는 이사여서 여기저기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거의 버리거나 태우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를 여쭈었더니 “네 아버지와 너희들이 입고 쓰던 거잖아” 하셨다.

예쁘게 이사하기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짐을 나르기 전에 어머니는 옥상에 있는 독 몇 개를 나에게 1층까지 나르도록 시키셨다. “어머니, 이삿짐센터 사람들에게 맡기면 돼요” 했는데 “아니다, 그거 네가 좋아하는 된장 고추장이다. 네가 올라가서 옮겨라”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어머니가 항아리에 담아주시는 장을 받아만 갔지, 그 장이 담긴 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짐을 옮길 때마다 감탄했다.
“아이고, 할머니, 이렇게 이쁘게 싸두시니까 우리가 할 일이 없네요.”
어머니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해요, 그렇게 땀이 흐르니 늙은이가 미안해서 못 보겠네요” 하신다. 짐을 다 빼고 나자 어머니는 빗자루를 잡고는 여기저기를 쓸면서 당신이 사신 흔적들을 지우신다. “이리 주세요” 해도 굳이 물리치신다. 빈집은 깨끗하다. 벽에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는 사진도 한 장 찍으신다. 뭔가 싶어 보니 당신 손자가 어릴 때 낙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오기 전 어머니는 현관문에다 편지봉투 하나를 붙여두신다. “뭐에요?” 여쭙자 “이것저것 적었어. 여기 살 사람들한테…” 하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그리하셨다. 외벽에 습기가 생겨서 곰팡이가 필 수 있으니 겨울에도 환기를 하는 게 좋다는 충고부터, 욕실의 전구를 남겨두었으니 버리지 말고 나중에 사용하라느니, 볕이 어디로 들어서 어디로 사라지니 소파를 어디에 두면 좋다느니, 심지어 창고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하라는 둥, 아기들이 있으면 주의해야 할 게 무엇인지 등등 꼼꼼하게 ‘우리 집 사용설명서’를 써서 남겨두었다. 이사를 온 사람이 어머니의 설명서에 감탄하여 전화까지 주었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미리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알아두신 모양이다. 인근 식당에 메뉴까지 주문을 해두시고는 출발 전에 준비해두라고 전화를 넣었다. 살던 집을 떠나오면서 골목 끝부분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떼 내시는 것으로 떠남의 의식을 모두 치르셨다. 골목길에 이삿짐 차가 주차해 있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메모였는데, 어머니는 꾸불꾸불 직접 쓰셨다.

사람이나 말씀이나
새로 이사하는 집은 어머니 혼자 사시기에 적절한 크기에다, 경치가 좋은 아파트이다. 어머니는 방 한 칸을 아예 서랍으로 채우셨다. 서랍에는 담아야 할 물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벽에도 몇 곳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못을 박을 자리였다. 이사는 오후 일찍 끝났다. 어머니는 이사비를 건네면서 “싼값에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모두 웃는 표정으로 떠나갔다.
“이거 저쪽에다 걸어다오.”
거실 가운데 자리에 걸어두라는 액자에는 성경구절이 씌어 있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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