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나와 우리 사이 Ⅳ

균형은 어떤 도움을 줄까
영화 씨는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곧 열이 오르고 목이 부으며 며칠 기침을 하고 난 후에야 감기가 지나간다. 좀 무리한 일정이 있었다 싶으면 이렇게 일주일 이상 힘들게 지내던 어느 날, 스치듯 생각이 떠올랐다. 자라온 집안 분위기가 몸으로 하는 일보다 머리 쓰는 일에 가치를 두어 한쪽으로 치우친 것과몸을 단련하거나 보살피기보다 거의 무시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체육 교과서에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토록 체력을 키우지 않고 살아왔는지.
먼저 가까운 에어로빅 클래스를 찾았다가 엄청 큰 음악소리에 놀라 문을 닫았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곳이 있을까? 발레 무용을 하는 곳이라면 그런 종류의 음악이 나올 텐데, 몇 십 년을 움직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스트레칭 발레’ 클래스가 있을는지. 주말 오전, 어렵게 한군데를 찾아 스트레칭 발레 클래스에 무조건 시간과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거울이 둘러져있는 방에서 몸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보게 된 영화 씨는 먼저 오른쪽, 왼쪽의 균형을 보게 되었다. 근육이 발달한 오른쪽에 비해 왼쪽에는 유연함이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는 대부분 모든 일을 오른쪽으로만 했는데, 스트레칭은 오른쪽과 왼쪽을 균등하게 움직이게 요구했다. 50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육체에 이토록 관심을 두지 않아온 게 이상했다.
놀라운 것은 몸의 균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생활 습관 하나하나에 균형이 연결되고 있었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과 ‘혼자의 시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나’를 위한 일과 그 밖의 부분 간에 조화를 이루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활에 균형을 잡으니 그 울적한 감기도 슬슬 지나가고 하는 일에 기쁨이 커지며 효율적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완벽한 삶의 균형을 찾아라
수십 년 째 전 세계를 다니며 ‘완벽한 삶의 균형을 찾아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폴 윌슨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것만 바라보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생활로 평화와 만족을 누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창한다.
또 균형 잡힌 생활로 평안하게 일할 때 성취도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다음에 말하는 사람들 같이 필요나 역할, 책임에 싸여 일에 치중하면 안타깝게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데, 그것은 즐거움과 자유가 주는 특별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해요.”
“다들 나만 믿고 바라보니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며 얻는 물질적 보상이 가족을 꾸리니까요.”
생활의 변화는 이러한 가운데에서 책임과 보람을 조금 내려놓음으로 시작될 수 있다. 물질 대신 ‘함께 하는 시간’으로, 정갈한 환경보다 ‘바라보며 놀아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면, 일에 치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조절하며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
균형을 맞추는 삶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 글이 있다.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삶에 아름답게 나타난다. 그것은 지혜로워야 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무리하지 말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개념이 여기서 왔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겸허하고 배려가 있으며, 친절한 모습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너무 고단한 상태나 우울한 상태에 빠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와 정신, 감정과 지식, 말씀과 기도, 일과 쉼, 미를 추구함과 보편성, 영양과 금식, 정돈과 편함, 말과 묵상, 글과 여백, 어른스러움과 아이 같음 등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얼마에 한 번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노트에서


균형 잡지 못한 사랑, 편애
인간의 마음과 윤리적 딜레마를 연구해온 철학자 스티븐 아스마는 “우리 모두에게는 편애 본능이 있다”고 하며 각각 유대감 형성, 감정 공유의 특성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 더 끌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신도 알게 모르게 자녀를 편애하기도 한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으로서 자녀를 기르며 자신과 닮은 외모나 기질 때문에, 아이의 능력이나 성취로 인해, 혹은 성별이나 병약함 때문에 어떤 아이에게 마음을 더 주게 된다. 이런 현상은 부모 자신이 나눠줄 수 있는 자원(에너지나 물질)이 충분치 않을 때 더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전에 비해 물질적 여유가 있고 두 세 자녀만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편애가 나타나는 것은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언 4장 27절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명시하고 있듯 ‘치우침’은 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부모에게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아이는 낮은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알코올, 약물이나 다른 중독에 걸릴 확률이 월등히 높다. 또한 늘 부족했던 인정을 채우기 위해 평생 애정을 좇게 되기도 한다.

사랑이 넘친 아이는?
그렇다면 각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어떨까?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형제간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되므로 불안이 있고, 사회 속에서 남들과 다른 기준을 인식해 부모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친밀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기 길을 개척해 자유롭게 나가는데 비해, 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녀는 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써버려 자기 고유의 개성을 발전시키지 못하기도 한다(엘런 베버 리비).
특히 요즘 이 ‘특별함’이 ‘평등’의식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주변에 얼마나 어려움을 주는가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반면 백악관에서 8년을 생활해온 미셸 오바마는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방 청소나 지나친 찬사를 금해줄 것을 부탁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나친 사랑의 형태, 균형 잃은 사랑의 모습을 미리 경계한 지혜로운 모습이었음을 알게 한다.

사랑의 균형 맞추기
그러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평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은 태어날 때 각자 본연의 사고 형태를 띠어 이를 고려해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곧 아이에게 주는 사랑도 각각 일대일의 관계로 특별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일러 ‘불공평하게 공평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아이임을 분별하여 각자에게 맞는 사랑을 채워주라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쏙 드는 자식에게 쏠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때 바로 균형 잡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희로애락이 얽힌 부모와 조금 다른 관계를 알게 하는 형제자매, 함께 더 오래 가야하고 그래서 예의도 가져야 하는 오누이, 선택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 엮인 이 관계를 부모들은 어떤 분위기로 물려주고 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전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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