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남 함안군 대산리 마을 동서비전교회에서 아주 작은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꼬불길을 몇 번이나 지났을까, 고갯길을 몇 번이나 넘었을까, 거무죽죽 감나무가 마당에 서있는 시골집들이 하나 둘 보이더니 저만치 작은 시골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목사님은 공연을 위해 온데만데 홍보를 하셨습니다. 지역 기독방송에서 한 주 내내 홍보, 5분 방송설교에 콘서트 이야기를 담아 은근 홍보, 함안일보 신문에 박스광고, 함안문인회원들 홍보, 대산리 경로당 어르신들 홍보, 반상회 홍보, 마을도서관 회원 문자홍보, 마을입구에서 부터 갈래길 전봇대에 어귀나무 가슴팍에도 ‘콘서트’라고 알록달록 써 붙이셨습니다. 풍선 달고 바람개비 달고 리본 달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언제 쉬셨을까 싶을 만큼 눈길 가는 곳은 손길이 다 닿아있는 데코레이션. ‘정성을 다하는 것이 천도’라던 말, ‘어렵게 차려진 잔치가 좋은 잔치’라던 옛말이 생각났습니다.
‘섬김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종의 모습으로 사셨던 예수. 사랑하면 종이 되는 역설.

사랑의 섬김을 나누고 받고
아침에 눈을 뜨면 새들이 노래를 들려준다는 얘기. 새벽기도 가려고 현관문을 열 때 문이 밀리지 않으면 쌀 고구마 감자 배추 무 등 밤새 엘리야의 까마귀가 또 뭔가를 놓고 가셨구나, 언젠가부터 이런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얘기. 처음 부임해 오셨을 때 배척하는 이들 때문에 서러운 세월을 견뎌야 했고, 굶는 날들이 이어지자 목회를 그만두려고까지 몸부림치셨다는 얘기. 목사님의 해맑은 미소가 왠지 아픈 눈물처럼 여겨졌습니다.
십자가를 걸지 않은 교회. 십자가는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고,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이 곧 예수라고. 할 일은 그 작은이들을 보듬는 일이 전부라고. 목사님의 얘기는 참으로 굵고도 진했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고 보니 앞에서 뒤까지 할머니들이 좍 앉아 계셨고, 드물게 청년 1명, 장년 2명, 목사님 사모님 선교사님 한 분 그렇게 끝. 준비해온 노래 콘티는 물 건너가고 할머니들에게 맞춰야하는 공연. 동요도 부르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다가 찬송도 부르고, 트로트를 부르다가 간증도 하고 예수님 이야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2시간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자비량으로 공연하리라 했는데 안 된다 하시며 기어이 봉투를 제 주머니에 꽂고 마시는 목사님. 떡 과일 야채 등을 박스에 꼭꼭 눌러 담아 단단하고 야무지게 싸주시는 사모님. 도대체 이건 나누러 간 건지 받으러 간 건지. 섬기러 간 건지 대접 받으러 간 건지. 기어이 눈물이 가슴에 고이고 말았습니다. 은혜는 제가 다 받은 듯 사랑의 빚을 진 기분으로 충만했습니다.
손 흔드시는 모습이 백미러에서 사라집니다. 산 너머로 해가 기울고 금빛 햇살이 유난히 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사라진 옛 에덴은 거기 숨어 있었구나.’
교회는 뭔가. 복음은 뭔가. 천국은 뭔가. 노래는 뭔가.
집으로 향하는 먼 길이 멀지 않았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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