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30대 초반의 한 여성분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삶의 경험을 들으며 어린 시절 그녀를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돌봐주는 어른이 없어 외로웠고, 무거운 삶의 과제들을 혼자서 해결해내느라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상담이 중반에 다다르자 그녀는 긴장을 드러내면서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쉽지 않네요” 하며 주저하였다. 말하고 싶어 하는 만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무언가로 인해 상담실은 조용히 흐르는 내담자의 눈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20대 초반 젊고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나누고 봉사하려는 순수한 마음이 가득했고, 신념에 따라 헌신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리라 믿었지만 그 사람들이 신념과는 반대로 이기적으로, 때로는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신념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결국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 속 비밀의 방에 넣어 두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담자인 나는 그 당시 그녀가 느꼈을 정신적 혼란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애통함이 얼마나 컸을지 가슴으로 느껴져 그만 같이 따라 울고 말았다.
얼마 후 상담이 종결되는 시점이 다가왔고, 과정을 되돌아보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상담 선생님이 같이 울어주신 게 가장 좋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 순간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고 하였다.
그녀가 상담실을 떠난 후 나는 그 말이 가슴에 울려서 한동안 상담실을 서성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상담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함께 울어줄 사람’이었다.

상담자의 눈물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하여 학자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고, 상담실은 내담자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공간이어야 하기에 상담자인 나의 감정은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만큼만 표현하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의식적인 조절을 할 수 없었고, 감정이 그냥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담자에게는 가장 ‘치유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경험은 상담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그녀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 되었다.
사람은 살다보면 뜻밖의 상황에서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신념일 수도 있으며, 직업, 건강, 재산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삶에서 상실과 애도는 아무도 피할 수 없으며 일단 상실을 경험하면 그 전처럼 살 수 없게 되곤 한다. 잃어버린 대상이 나에게 소중할수록 그 상실감이나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자기가 사라지는 불안이라는 고통스런 감정을 마주한다. 놀라고, 울고, 슬퍼하고, 울부짖고, 마음 아파하는 애도는 상실 혹은 박탈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다.

애도에 잠긴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적 교류, 대화이다. 애도하는 사람의 고통은 믿고 신뢰하며 공감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애도를 충분히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울고 아파하면서 그들의 돌봄 속에 있게 될 때 치유가 시작된다. 상실에 대한 치유, 애도 상담에서 눈물은 슬픔을 해소하는 치유장치이며, 위기 상황에서 상실한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은 전문가가 아니라 ‘가까운 지인’이다.
우리 사회는 슬픔과 마음의 고통을 감추라는 기대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았다. 그러나 슬픔과 고통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표현되지 않은 애도는 적절한 시기에 표현되지 않으면 상실한 사람의 행복을 위협하는 방식인 우울, 사회적 철수, 신체적 질병 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까운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는 상실을 직면할 수 있는 내적 힘을 제공한다. 상실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나누면서 애도하는 과정은 마음속 상실한 대상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구축하고, 삶에 재진입하도록 돕는다. 그가 자기 자신 안에서 상실된 대상의 중요성을 회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타인들과의 현재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고 가치 있게 여기게 되면 치유가 완결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상실이라는 실존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가장 훌륭한 치유제이다.

왕은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상담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상담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기업에서 오랫동안 상담을 하며, 직장인의 일과 사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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