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는 책을 읽지 않는다. 하물며 남편이 책을 만들어 밥을 먹고 사는데도 책을 읽지 않는다.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에세이 종류도 각시에게 책 읽을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나마 간간이 읽는 것도 요리 책이나 육아서처럼 각시가 처한 일상에 유용한 정보성이 강한 책들이다. 신혼 때에는 남편에게 밥은 먹여야겠으니 요리 책이라도 보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머님이 주말에 먹을 반찬까지 살뜰히 챙겨 주신 후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다만 아이들은 잘 키워야겠으니 육아서 정도만 어쩔 수 없이 본다는 게 각시의 변이다.

이만하면 책과 서점은 가히 각시와 상극이랄 수 있는데 놀랍게도 이런 각시도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있다.
어제 일이다. 오랜 만에 각시를 집밖에서 만났다. 그런데 각시의 손에는 놀랍게도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 한 권 들려 있었기에 나는 어인 일로 그대가 책을 다 샀냐고 반색하며 무슨 책인지 살펴보았다. 각시는 최근에 내가 만든 책을 들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내가 만든 책을 사느라 쓸데없이 생활비를 축낸 각시를 나무랐다.
“읽고 싶으면 내게 말을 하지. 그러면 한 권 가져다 줄 텐데.”
그런데 각시의 대답이 걸작이다.
“남편이 힘들게 만들어서 열심히 발품까지 팔고 있는 책인데 나라도 한 권 사주어야 스트레스 덜 받고 살지 않겠어?”
오랜만에 각시에게서 감동이 마구 밀려들려는 찰라 각시의 얌통머리 없는 다음 대사가 이어졌다.
“이런 책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만들고 어떤 사람이 읽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

좀 억울해서 굳이 반박이란 걸 해야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사는 이유가 비단 사람을 만들어 내는 등의 거창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가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간단한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다.
주변에 아무 종이라도 있으면 가져다가 각자가 원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보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으니 너무 쉽게 생각하고 달려들 일은 아닐진저. 실제로 자신만만하게 펜을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서른 개도 채 써넣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는 게 서른 가지도 되지 못할 만큼 소박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는 것을 적었기 때문이란다. 조금만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려 가깝게는 가족이나 친구, 멀게는 사회와 인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그들이 원했을 법한 것도 헤아려 함께 적었다면 각자가 원하는 것 백 가지 채우는 일은 분명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책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를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바라는 것까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데 책보다 좋은 것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때로는 책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각시가 책을 산 이유도 결국엔 이타적인 발로가 아니었겠는가.

P.S.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출판계가 울상입니다. 송인서적이라는 대형 도매 업체가 부도를 맞으면서 출판사와 관련 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번쯤 책을 사는 여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기회도 가져보고, 더 나아가 가까운 동네 책방에서 좋은 책을 고르고, 찾을 수 없다면 주문도 해보는 경험이 주변에서 자꾸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장다운
글을 쓴 장다운은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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