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선교회의 아름다운 콘서트로 한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 후 며칠 뒤 가방을 열어보니 그 교회 주보가 가방 속에 구겨져 들어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주보에 실린 짧은 얘기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본 기억이 스몰거렸고 주관적 해석이 꼼틀거리긴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 속 눈물통 뚜껑이 툭 열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구겨진 주보를 펴며 문득 알아차린 건 한 주 내내 목사님의 미소가 생각이 났었다는 것. 그래서였는지 주보에 실린 얘기가 더욱 와 닿았습니다.
선교회가 하는 일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교회는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습니다. 100만원의 거금과 1년에 한 번씩 약정헌금을 하시겠다고. 그 귀한 마음이 저에겐 아름답기보다는 가슴 저려왔습니다.
그 이유는 20여 명 정도의 작은 교회인데 교우들이 기초생활수급자에,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회가 복되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낮고 낮은 가난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쿰바야’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세상 가장 가난한 이들이 불렀던 노래.
“우는 자에게 오소서 우는 자에게 오소서 오 주여 오소서!”
구겨진 주보를 펴서 찬송가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곤 주보 속의 이야기가 내내 마음속에서 꽃노래처럼, 별노래처럼 은은하게 울렸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일편 어리석음이구나…. 이해 너머 믿음, 믿음 너머 사랑, 사랑 너머 신비.
자발적 바보가 될 수 있는 넉넉함의 이유가 마음속에서 삶으로 흘러야겠구나.
주보에 실린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충성>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파나이 섬에서 선교하고 있는 자기 동생 선교사와 함께 50여 명의 손님을 대접했답니다. 동생 선교사는 대형버스를 운전하고 자신은 동생 승용차로 버스 뒤를 따랐답니다.
그런데 앞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이 무척 심해 승용차를 운전하는 현지인인 기사에게 버스를 추월, 앞장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가 뒤따라오라고 하였다면서 결코 앞장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선교사의 형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답니다. 자기는 선교사님이 말한 대로 뒤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가 멈추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자 동생은 웃으면서 이 기사는 자기 말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충성된 종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고지식하게 들었던 아브라함과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하신 예수님도 생각났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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