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푹의 용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8일, 사이공에서 약 40km 떨어진 한 마을이 미군의 폭격으로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었다. 폭격기가 마을을 훑으며 지나가는 그 아비규환의 상황을, AP통신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사진 속 장면은 아홉 살 난 여자아이가 발가벗은 몸에 불이 붙은 채 길거리로 뛰쳐나와 황급히 달리는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그해 보도 사진 분야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알려진 전쟁사진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킴 푹’이라는 이 사진 속의 어린 소녀는 이날 입은 화상으로 무려 14개월 동안 17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 나온 킴 푹을 기다린 것은 폭탄에 새카맣게 타버린 집이었다. 킴 푹은 하루하루의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든 시간을 보내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쌓아갔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미국에 대한 증오는 물론 자신을 둘러싼 이웃과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증오한 나머지 자살의 충동으로 이어졌다.
이때 킴 푹을 지켜준 것이 성경이었다. 그녀는 성경과 또 다른 종교서적을 읽으며 삶의 의미를 묻고자 발버둥 쳤다. 그러면서 스무 살이 된 1982년 크리스마스에 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용서의 기쁨을 느끼며 전쟁의 상처로부터 해방되어, 마침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갖게 된 것이다. 불면증이 사라지고 삶에 소망의 싹이 돋아났다.
그 후 그녀는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고, 유엔 친선대사로 세계를 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한편 ‘킴 국제재단’을 설립, 전쟁고아를 위한 병원, 학교, 집 등을 지어주는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목하게 하는 사명
킴 푹이 보여준 용서와 화해는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소통의 참 모습이다. ‘용서-화해-소통’은 그런 점에서 매우 긴밀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성경은 상대방이 내게 화해를 요청하도록 기다리기보다 비록 희생을 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함으로써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백성들 또한 먼저 용서하고 화해의 손을 내밀기를 기대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린도후서 5:18)라고 기록한 데서 잘 드러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곧 ‘화목하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축복이며, 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다.
물론 이 일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는 함께할 사람을 이어주시고, 지혜를 주시며, 필요한 도구까지 마련해주신다. 화목하게 하는 일은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일이기도 하다.

갈등하는 사회의 그리스도인
우리 사회는 지금 서로 다른 생각들로 심하게 갈등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지역 갈등이 정치적 선택을 결정하고, 이념적인 갈등은 공존이 불가능할 것처럼 첨예한 갈등을 불러왔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소중하듯 타인의 생각도 소중한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용의 미덕을 가지고 평화로운 공존의 세계를 이뤄내야 한다. 물론 참된 공존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완성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 갈등하는 사람들과 화목할 뿐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관용으로 공존을 추구하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화목을 도모하는 ‘일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용서-화해-소통’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엇보다 앞세울 줄 알아야 한다.

이규왕
수원제일교회 담임목사. 아름다운동행 법인이사장. 한국교회 갱신과 바른 목회를 위해 정진하며 지역사회와 교회가 소통하는 섬기는 목회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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