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무(無) 장례식’의 유지를 남기고 떠나신 고허순길 목사님의 장례식 이야기를 보도를 통해 접했습니다. 마음에 울림이 커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목사님은 고신대학신학대학원의 오늘이 있게 한 분으로 평가받는 신학자요 고신교단의 정체성을 세우는 진정한 리더였다고 합니다.
그분이 남긴 ‘3무 장례식’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유언의 가치’와 유언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름다운동행이 김정삼 판사님의 법률서 <유언>을 내놓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참이어서, 누군가의 유언에 대해 매우 관심이 갑니다.

떠나시기 6개월 전, 고신대학원 강당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유언하듯이 학교의 미래를 염려하며 논문을 발표하셨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나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신 허 교수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은 이 ‘3무 장례식’ 소식에 더욱 절절한 마음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고인의 영정과 조의금, 헌화하는 꽃이 없어 ‘3무’랍니다. 기독교의 장례예식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이런 예식에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런 고귀한 뜻은 감동받기에 충분합니다.
장례절차에 대한 그 분의 유지가 또 있습니다. 입관예배와 장례예배를 교회가 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적 의식이고, 가족들끼리 할 일이라고 유언하셨다는 설명을 들으니, 참으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새해 벽두에 이런 소식을 접하고 보니, 오늘의 개혁교회가 원점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해가, 겉이 아니라 본질의 것들을 새롭게 하는 기회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과 잇대어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난 해 ‘자서전(회고록)쓰기학교’를 준비하면서부터 마음에 깔린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이 뭘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살아온 시간을 반추해보게 되는 자서전 쓰기여서 그런지, 바로 눈앞의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감히 가까이 가보는 마음자리가 참 소중한 삶의 자세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서 ‘내려놓음’과 ‘더 내려놓음’ 등을 내놓으신 이용규 선교사님은 인도네시아에 기독교대학 개교를 준비하면서 ‘기대’라는 책을 또 내놓으셨는데, 진지한 삶의 자세는 모름지기 이런 마음들이라 여겨집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역사의 ‘지금’ 이 시간, ‘이후’를 생각하며 상황 속의 사람들을 애통한 마음으로 보듬게 됩니다.
이번 호에 실린 이야기, 특집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의 내용과 기획 ‘나와 우리 사이’를 만든 것도 이런 마음자리에서 나온 애정어린 지면들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각 지면에서 저희의 간절한 사랑과 회복의 손짓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기어코 움티울 새싹과의 해후를 대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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