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감사이야기 공모전 수상작 교정 부문 으뜸상

교정 부문 으뜸상 / 한목은(광주 교정마을)

다섯 번째 감사이야기 공모전 교정부문 수상작을 지면에 싣습니다. 지면 관계로 내용 중 일부만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교도소에 들어온 날부터 한 달 가까이를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다. ‘이곳에 내가 왜 있어야 하는지?’ 나를 이렇게 만든 이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이 나를 더 어둡고 캄캄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분류심사라는 절차를 밟게 되었다. 종교 기재란이 눈에 들어왔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독교라고 썼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까? 나를 만나 주실까?’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돌아보면 나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만 의식하며 남들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많은 부를 위해 뛰고 또 뛰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어느 세차게 눈보라 치던 새벽녘, 분명 누군가 날 깨웠다. 그건 창살에 부딪히는 바람도 눈보라도 아닌 ‘음성’이었다. 그때 나는 신입이었기 때문에 화장실 앞에서 잠을 잤는데 화장실 위쪽 작은 창문에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걸 봤다. 그리곤 나를 부르는 음성…. 그 음성은 내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음성, 강하면서 크지 않고 속삭이듯이 들리는 음성, 가슴이 두근거리며 뜨겁고 온몸에 기운이 싹 빠져나갔다. 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멍하니 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어느 날 나의 기도가 바뀌어 있었다. 항상 나를 위한 기도가 가족을 위한 기도로, 용서의 기도로, 사랑의 기도로 변했다. 나는 간구하였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저에게 비록 이곳이 감옥이지만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제게 주소서.”
이틀이 지날 쯤 청소부 사동도우미로 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본이 되기로 다짐하고 기도하며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식수를 나누어 줄 때나 배식을 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아무리 형제들이 짜증을 내고 설령 밥이나 반찬이 적다고 밥그릇을 복도로 내던져도 웃음으로 그들의 감정을 안아 주었다.
사동도우미를 시작한지 2개월 후였다. 어느 날 식수를 좁은 배식구로 넣어주는데 누군가 나에게 “형씨는 뭐가 그리 좋아서 맨날 즐거운가요. 감옥이 좋으실 리는 없을 테고”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물어보는 어투가 시비조가 아닌 무어랄까? 부드러운 질문.
나의 대답은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항상 기쁘고 감사해요.”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닌 항상 준비되어 있는 말처럼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세상에서 한 번도 타인에게 하지 못했던 “예수 믿으세요”를 감옥에서 내가 할 줄이야.
그런데 그 친구 말이 더 이상했다. 짜증도 안 내고, 정말 순한 양처럼 “그럼 성경책 좀 구해 줘 봐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는 무기수로 이곳 광주에서도 유명한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사랑으로 대하니 다툼도 없을 뿐더러 재판선고를 앞둔 형제, 몸이 아픈 형제, 이감을 가는 형제들이 기도를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곳 사동 도우미는 두 달에 한 번씩 일하는 곳을 옮기기 때문에 더 많은 형제들을 접하게 되는데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할렐루야”가 쉽고, “아멘”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날이면 잠들기 전 기도할 때 너무나 기쁘고 감사가 넘쳤다. 이제껏 남의 눈을 의식하고 제 잘난 멋에 살았던 내가 날마다 나를 지켜보시는 이가 있고,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으니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일이 곧 나의 기쁨이요 감사가 넘쳐나는 걸 체험하고 있다.

나에게 어둠의 흑막이 서서히 걷히며 한 줄기 빛이 비춘 것이다.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었다. 그 빛은 나의 심령을 성령으로 가득 채웠다. 내가 이길 수 없고 힘들어 할 때 성령님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매일 나를 흔들어 깨워주시고 김치 한 가닥에 작은 공기밥에도 감사함을 주시고 비좁은 방에서 부대끼며 불편해도 이 추위에 사람의 따뜻한 온기 주심에 감사하고. 이 담장 안에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오늘도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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