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

홍성훈의 오르간을 만나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내 유일의 파이프 오르간 제작(오르겔바우) 장인인 홍성훈 씨(사진·위)보다 그가 제작한 오르간을 만난 것이 더 먼저였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수림교회 본당. 평일이라 연주자 밖에 없었는데 연습을 위해 하는 연주는 그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한참을 연주자 등 뒤에서 조용히 넋을 잃고 들었던 것 같다. 그때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눈물도 나고 가슴이 벅차고 그랬던 것 같다. 오르간 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푸근함과 삶을 진중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나서 만난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 독일 장인에게 직접 사사 받고 고국에 돌아와 한국만의 오르간을 제작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그는 기자가 들은 그날의 오르간의 묵직한 소리에 비해 훨씬 밝은 색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간은 정직한 악기입니다. 연주자의 기분 따라 움직여지는 악기가 아니라 정직하게 소리를 내지요. 한 음 한 음 집중할 때 옳은 소리가 납니다. 무형의 공기가 수백 개의 파이프를 타고 들어가 천상의 하모니로 다시 태어납니다.”
파이프가 잡아챈 무형의 공기는 욕심 있는 소리가 아닌 공간과 시간을 받쳐주는 소리로 다시 되돌아 나왔다.

‘하늘의 소리’를 짓기 위해
탈춤을 추고, 서울시립가무단으로도 활동했던 그가 돌연 독일로 떠나 1997년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만든 오르간은 모두 16대.
누군가는 파이프오르간이 워낙에 고가의 악기이니 홍성훈 씨가 큰돈을 벌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대 한 대 제작할 때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소리’를 위해서는 이득과 상관없이 움직였다.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가 만나야 할 ‘하늘의 소리’를 짓기 위해서였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아름다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를 만들게 하시다니,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또 한 번 감격합니다. 생명력 있는 소리로 그분을 찬양하는 오르간을 만들리라, 이 길이 정녕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날마다 더해집니다.”
그렇게 그가 만든 오르간은 한 대 한 대 모두 다른 모양과 한국적 특색을 갖고 있다. 국수교회에 설치되어 있는 오르간은 한국의 산수를 닮아 ‘산수화 오르간’이라고 불리고, 선사교회 오르간은 12제자를 상징하는 12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트루엔오르겔은 뒤주에서 영감을 받았고, 칠보 나비를 장식한 블루오르겔 등 소리만큼 모양도 아름답다.
“오르간은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와 들리는 소리로서의 음색이 합쳐져서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납니다.”

사진작가가 따라잡은 삶
그런 홍성훈 마이스터의 삶을 13년 동안 따라잡은 이가 있다. 사진작가 김승범 씨(사진·아래 오른쪽)는 2003년 인터뷰 사진 촬영차 그를 만난 후 13년간 카메라에 그를 담았다. 그리고 최근 그 기록을 책 <천상의 소리를 짓다>(김승범 글·사진, 생각비행)에 담아 출간했다.
“물론 중간에 서로 힘든 시기가 있을 때는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꾸준히 홍 선생님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저는 사진작가로 늘 ‘바로보고 관조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홍 선생님의 삶을 들여다보니 계산하지 않은 ‘순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움직이셨고 선생님은 계속해서 따라가셨더군요. 안 그랬으면 우리나라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나라만의 오르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인생에 판타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르간이 한 대씩 만들어질 때마다 너무 놀라웠고 즐거웠습니다. 그때 알았지요. ‘아, 삶은 내 전부를 던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선생님처럼 던져야 하는 거구나’.”
오르간 하나가 만들어질 때 수많은 공정이 필요하듯이 13년간의 우정과 시간이 쌓여 책이 만들졌다. 올해가 홍성훈 마이스터의 오르간 제작 인생 2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힘들게 걸어온 ‘오르간 로드’에 방점을 찍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것.

오르간 로드
오르간 로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야겠다. 먼저 유럽 가톨릭과 기독교와 함께한 오르간 역사에 비하면 한국의 오르간 역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런데 조선 중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남양 홍씨 담헌 홍대용은 선진 문물을 접하기 위해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북경 천주교회당에 있는 오르간을 보고서 감명을 받는다. 거문고 명인으로 음악적 조예가 깊었던 그는 즉석에서 음을 짚어가며 조선의 가락으로 옮겨보려는 시도를 했고 짧은 시간에 기계적 원리까지 파악했다. 그가 쓴 <을병 연행록>을 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이 악기 제도는 바람을 빌려 소리를 나게 하는데, 바람을 빌리는 법은 풀무와 한가지다. 바깥바람을 틀 안에 가득히 넣은 뒤 자루를 놓아 바람을 밀면 들어오던 구멍이 절로 막히고 통 밑을 향하여 맹렬히 밀어댄다.”

담헌 홍대용은 오르간을 만들 수 없었지만 250여 년이 흐른 후 같은 후손 남양 홍씨 홍성훈은 한국 땅에서 오르간을 만들어냈다. 오르간 로드, 그 길은 또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파이프 오르간은 메커니즘적으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악기입니다. 그러나 최첨단 시대에도 오직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이지요. 이 오르간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그래서 다릅니다. 교회에서의 소리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이 시대에 좋은 소리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동로마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로 파이프 오르간 문화가 움직여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래서 우크라이나 생명의말씀교회(블라디 밀쿠네츠 목사)에 작은 오르간 ‘바람피리’를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교회 신학대학원에 신설된 교회음악과 학생을 훌륭한 교회음악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임현영 선교사와 요한선교단 대표 김동진 목사가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7천만원 목표로 모금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 ‘한국의 좋은 소리’를 통해 교회음악 지도자를 키우자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까지 연결된 ‘오르간 로드’ 위, 의미 있는 사역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교회는 ‘공명’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울리시는 대로 울려야 하는 우리인데, 울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 있어 ‘소리’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더 좋은 음향기계가 아니라 더 좋은 소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멈출 수 없습니다. 오르간 제작의 길은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소리를 통해 위로를 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마땅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외로울 수 있지만 오르간 로드 위 홍성훈 마이스터는 오늘도 걸어간다. 그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천상의 소리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프로젝트 문의 : 김동진 목사 010-7293-3217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002-584528(요한선교단)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