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폭발을 다룬 영화 <판도라>로 읽는 원전 실태

최근 개봉한 <판도라>는 한국 최초의 원전 재난영화다. 경상북도 한 원전 마을을 모델로 한 이 영화는 작년 여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였지만 ‘탈핵’이라는 선명한 메시지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던 상태였다. 그러던 중 9월 경주 지진과 정치적 상황의 변화가 맞물려 12월에 극장에 걸렸고, 현재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순항 중이다. 좀비도 아니고, 변종 바이러스 생물체도 아닌 ‘원전 폭발’이라는 지극히 현실적 재난을 다룬 영화 <판도라>는 원전 밀집도 1위 땅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영화가 던지는 두 가지 질문
<판도라>는 주민들의 삶이 원자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바닷가 마을 월촌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재혁과 친구들은 대부분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원전 노동자다. 재혁의 어머니와 형수는 발전소 직원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방사능 피폭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 없이 생계를 이어간다. 동네 주민 대부분이 원전을 기반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기에, “원전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밥솥,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재혁 어머니의 말은 원전을 향한 주민의 믿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이 발전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된 것을 눈앞에서 본 재혁에게 있어 노후한 원전은 밥솥이 아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이다.
원전의 위험성을 인지한 사람이 또 있다. 원자력발전소장 평섭이다. 발전소 관계자들과 정치권 일각은 노후 원전이 지진 앞에 무력하다는 위험성을 감지하지만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까지 막아버린다. 원전을 둘러싸고 이해관계로 얽혀 있던 일명 ‘원전 마피아’는 결국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해 방사능이 유출되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순간까지도 원전 폐쇄를 반대하며 사고 수습을 지연시켜 더 큰 위험 가운데로 상황을 몰고 간다. 무엇보다 원전을 폐쇄하면 나라 전체가 블랙아웃(전기수요가 공급능력을 넘을 때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사태)이 될 거라며 폐쇄를 반대하는 모습은 영화 속 갈등의 절정이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과연 원전은 재혁 어머니의 믿음처럼 낙후한 마을의 유일한 밥솥일까? 그리고 원전가동을 중단하면 우리는 대체에너지가 없어 블랙아웃 상태가 될까? 정말 원자력 에너지는 필수적일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 속 재혁의 대사로 답할 수 있다. 그나마 발전소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고 체념하는 친구에게 재혁은 오히려 발전소 때문에 마을에서 농사도 못 짓고 고기도 못 잡고 누구도 찾아 오지 않는 삭막한 곳이 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언제 방사능이 유출될지 몰라 불안 속에 살아가는 건 마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재혁의 불안 대로 지진이 나자 밥솥은 순식간에 폭탄이 되어 주민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이 짐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 애당초 원전에서 도망갈 수 있는 퇴로란 존재하지 않으며, 원전 폭발 이후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영화는 현실적으로 재현한다. 재혁의 가족이 방사능을 피해 마을을 벗어날 때 “인근 5개 마을 주민 1만 7000명이 10km 떨어진 대피소로 이동중이지만 왕복 2차선인 31번 국도가 유일한 대피로라서 심각한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거나 “우리나라는 인구 밀집지역에 원전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수준의 사고가 났을 경우 부산, 대구를 비롯해 150만 명이 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되고, 남한 면적의 11%가 죽은 땅이 된다”는 대사를 집어넣는 식이다. 이 대사는 제작진이 직접 현실 원전 주변의 도로와 인구 상황을 확인해 얻어낸 결과다.
그 뿐 아니라, 원전 폭발 후 대통령이 총리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묻자 간단히 “없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오늘의 현실에 가장 가깝다. 노후 원전에 대한 대비책 없이 그저 안전하다고 홍보만 할 뿐 대비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함은 핵의 위력 앞에서 어떤 대책도 없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이것이 원전 문제의 본질이며, 동시에 노후 원전 폐쇄가 시급한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원전을 폐쇄하면 다른 에너지 대안이 있을까? 탈핵을 주장하는 기독교 시민운동 단체 연대인 ‘잘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기독교본부’에서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핵 발전소는 국내 전기생산량 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수력 1.1%, 화력 64.9%, 대체에너지 3.6%가 전력을 생산중이다. 즉, 국내 발전소 설비용량과 전력사용량을 감안할 때 적절한 전력수요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도 전기 사용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미라는 것.
또한 서울시의 경우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으로 2015년 전력사용량을 2011년에 비해 핵발전소 1기 분량인 1,522GWh나 감축하였다는 예를 본다면 합리적인 전력수요관리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할 때 핵발전소 폐쇄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작은 실천을 촉구하다
현재 가동 중인 우리나라 핵발전소 25기 중 12기가 영화 속과 같은 노후 원전이다. 얼마 전 9월 지진으로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췄다가 시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 12월 초 슬며시 재가동 승인을 받은 월성 1호기를 포함한 모든 노후 원전은 즉시 수명 연장을 중지하고 폐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게 <판도라>의 경고다. 이런 큰 정책의 실현을 위해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난 12월 9일에 발족한 <잘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기독교본부>는 다음과 같은 실천사항을 제안했다.

▲잘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참여하기 ➜ goodbyenuke.kr
▲탈핵주일 자료집을 이용해 탈핵예배 드리기(2017년 3월 5일을 탈핵주일로 지정)
▲교회 내 탈핵공부모임 만들기/ 탈핵강의 듣기(강의 문의: 02-711-8905)
▲탈핵 영화를 교회나 영화관을 빌려 공동체 상영하기
▲핵으로 고통 받는 현장에 찾아가 기도회 갖기(고리나 월성, 영광 등)


신화 속에서 판도라는 금기된 상자를 열어 세상에 온갖 재앙을 들어오게 했지만, 그 사이에는 ‘희망’도 함께 세상에 들어왔다. 영화 제목이 <판도라>인 것은 이미 재난 현실이 우리를 위협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완성하는 몫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는 상징 아닐까. 탈핵을 위한 작은 실천 한 걸음으로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나라라는 희망을 남겨줄 몫이 우리 앞에 있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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