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교정부문 구분 심사

“감사이야기 공모전에 작품을 보내려고요.” 올해 공모전에는 수줍어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문의전화를 주시는 분들의 전화가 유독 많았습니다. 부족하지만 보내보려고 한다며, 우편이나 이메일로 감사이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올해도 역시 일반 작품과 전국의 교정마을에서 답지한 작품들을 별도로 구분하여 심사하였습니다. 또한 청년 참가자들을 위한 청년상도 마련하였습니다. 아래와 같이 제5회 감사이야기 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하며, 당선작 중 몇 편을 지면에 싣습니다. 지면 관계로 내용 중 일부만 발췌하여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수상 내역

* 일반부문 *

<개인>
# 으뜸상
“감사로 맞이하는 아침 햇살” / 박연숙(서울)


# 버금상
“감사의 힘” / 이안나(부산)
“하나님 안에서” / 한준(화성)

# 장려상
류경희(서울) 이은우(인천) 오희숙(서울)

# 100가지 감사상
채정아(서울) 이미나(성남)
이승영(인천) 김명규(여주)
변윤미(인천) 김연경(인천)
손은진(인천)

# 푸른나무상
김하은(영강쉐마기독학교 6학년)
유정훈(인천도화초등학교 4학년)

# 청년상
이은형(서울)

<단체>
공로상 인천제2교회, 영강쉐마기독학교

* 교정부문 *
으뜸상 한목은(광주 교정마을)
버금상 장이규(대구 교정마을)
장려상 신동하(광주 교정마을) 강숙영(청주 교정마을)
브니엘(전북 교정마을) 양영일(부산 교정마을)


단체상 이야기

영강쉐마기독학교
원주시에 위치한 영강교회 내 영강쉐마기독학교는 기독교육을 실시하는 대안학교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를 주제로 학생들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하였으며, 학교 채플시간에 다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학교 측은 “아름다운동행 감사이야기 공모전을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었고, 학생들의 글들을 모아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수준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감사한 내용을 하나님께서도 기쁘시게 받으셨을 거라 믿습니다”라고 밝혔다.

인천제2교회
인천제2교회는 아름다운동행 감사이야기 공모전에 맞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감사글쓰기를 진행하였다.
교회 측은 “추수감사절에 감사헌금뿐 아니라 자신들의 감사이야기를 풍성하게 드리도록 홍보에 힘써 많은 분들의 동참을 독려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하셨고, 삶에서 나타나는 감사제목과 사건들, 감사한 분들에게 드리는 편지 등이 넘쳐났습니다”라고 전해왔다.

심사평
<장엄한 감사의 대합창> - 심사위원장 박종구 목사 (시인·월간목회 대표)


감사란 하나님과의 바르고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받은 선물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 바
른 관계가 선재할 때 비로소 나와 이웃과의 수평적 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의 손길을 주고 계신다. 다만, 우리 인간이 스스로 불화 속에 있을 뿐이다.
으뜸상으로 선정한 박연숙 씨의 <감사로 맞이하는 아침 햇살>은 생명을 주신 분과의 화해를 통한 바른 관계 회복이 눈부신 햇살로 다가오는 고백이다. 태생적 아픔을 지니고 태어난 아들과의 9년 세월을 통한 내면의 변화를 투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는 고백은 생명을 주신 분을 향한 경외와 감사와 송축이다. 그래서 생명의 존엄을 깨닫게 되고, 일상의 작은 일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감사신앙은 마침내 매일 아침 창가에 비치는 아침 햇살을 감사로 맞이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버금상 이안나 씨의 <감사의 힘>은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의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감사일기 쓰기 등을 통해서 감사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버금상 한준 씨의 <하나님 안에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자신의 감사로 승화시켰다. 아버지의 아픔을 원망했던 자신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내 아들도 아팠다’는 응답을 받는다. 마침내 찬양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찬양을 가득 채워주신 그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청년상 이은형 씨의 <감사가 나를 찾아오기 전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애환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 속에서 감사로 자신의 삶을 승화해가는 젊은이의 힘이 보였다.
또한 자신의 감사찾기 100가지를 쓴 분들이 아주 많았다. 베스트7을 뽑았다. 이분들의 후일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수상하지 못하는 많은 100감사 쓰기 도전자들도 삶에 큰 간증거리가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수상자뿐 아니라 응모자 모두 더욱 분발해서 장엄한 감사의 대합창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한다.

으뜸상
<감사로 맞이하는 아침 햇살> -박연숙


노처녀가 시집 안 간다고 하는 것이 3대 거짓말 중의 하나라더니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될 줄이야. 아무리 봐도 불공평한 세상,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을 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이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 싫어서 결혼을 기피했고, 만에 하나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그런데 웬걸. 마흔이 넘어서 엄청(?) 차이 나는 연하의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하더니 석 달 만에 아기를 가졌다. 아기는 가족들의 마음에 이해와 용서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옛날 같으면 벌써 죽었다.” 인큐베이터에서 두 달을 보내고 집으로 데리고 온 예인이를 보면서 친정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맞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임신 8개월이 되었을 때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기 배에 물이 차있다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 병원의 의사는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하면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 아기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건강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뒤섞인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후 수술대 위에 누웠다.

침대 곁에 서 있던 남편의 얼굴은 어두웠다.
“예인이는 어때?”
“얼굴이 비대칭이고 한쪽이 찌그러져 있어.”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아기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향했다. 예인이는 산소호흡기와 여러 개의 줄을 달고 있었고, 황달 치료 때문에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 기계에 생명을 의지한 아기의 모습을 보니 애처롭고 미안한 마음에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낳아서 미안하다. 낳아서 미안하다. 고통스럽게 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직접 보니 남편의 말을 듣고 상상했을 때보다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들으니 예인이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태어날 때 태변을 먹어 양쪽 뇌가 손상되었고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코넬리아 드 랑게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이 있다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발달 장애 증후군의 하나로 지적 장애, 성장 장애, 사지 기형 및 특징적인 안면 모양이 주 증상이라고 한다. 진단서에는 열 개가 넘는 병명이 적혀있었다. 뇌, 심장, 신장, 폐, 간, 췌장, 눈, 귀, 팔, 다리 등 멀쩡한 곳이 없었다. ‘만신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혼자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인 줄 알았다. 아침마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마저 싫었다는 한 환우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과 각종 검사로 2년 여를 병원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인이의 환한 미소와 이모저모로 도움을 주신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의 삶에 관심을 두고 손잡아주고 함께 걸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예인이를 돌보는 일이 한결 가벼웠다. 젊은 시절 인생의 무상함을 곱씹고 있었던 나에게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큰 위로가 되었는데 예인이를 돌볼 때도 힘이 돼 주었다.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뭔가 큰 일을 해야만 삶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기에도 바쁘고 무기력한 내 모습에 한탄하고 있을 때 접하게 되었던 시다. 예인이를 낳은 후에 나는 헐떡이는 작은 새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았고, 내 작은 새, 예인이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흘러 얼마 전 예인이는 아홉 살 생일을 맞이했다.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가지 질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걸어 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하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운다. 예인이와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성숙시켰는지. (후략)

푸른나무상
<50가지 감사제목> -유정훈 인천도화초등학교 4학년


1. 제가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제가 앞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 제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 제가 이름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2. 제 존재가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3. 좋은 가정에서 자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4.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5. 무료로 학교교육과 학교급식을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6. 학교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즐겁게 생활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5. 항상 친절히 챙겨주시고, 고생도 많이 하시는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36. 항상 묵묵히 일찍이 식당에 오셔서 밥을 챙겨주시는 교회 식당 봉사자님들께도 감사합니다.
37. 성경고사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주일학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47. 제가 굳게 마음을 먹고 이 글을 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8.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공모전을 개최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푸른나무상
<감사의 의미> - 김하은 영강쉐마기독학교 6학년


어린 시절 나는 ‘감사’라는 감정과 ‘감사’의 개념을 잘 몰랐었다.
늘 받는 일에만 익숙했고, 또 그 받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하나님께 감사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잘해주는 사람들에게만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사람뿐 아니라, 내가 가장 감사해야 할 대상을 찾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이었다.
4학년 때 친했던 여자 친구들이 모두 다 전학을 가서 여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외롭고 걱정이 앞섰으나, 우리학교 언니, 오빠들이 친하게 대해주고 늘 챙겨었다.
힘든 나에게 이러한 언니들과 오빠들을 곁에 있게 해주셔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밖에도 쉐마학교를 다니게 해준 것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교회,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 만날 수 있게 된 것 모두 감사했다. 이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감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만약 내가 ‘감사’의 의미를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기적이고 거만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버금상
<감사의 힘> -이안나


취업이 되지 않아 불평, 불만이 많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를 적는 것조차 힘들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감사하니 ‘취업하지 못 했어도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돈 만 원 가지고 2~3주를 버티면서도 그 돈이라도 있음에 대한 감사, 오히려 돈이 없어 도둑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감사’ 등 웃기지만 참 재밌기도 하고, 신기한 감사들이 많다는 것이 새삼 즐겁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고 조금씩 저의 삶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러던 중 감사가 진심으로 하는 감사가 아닌 습관처럼 하는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를 감사라는 주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초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하여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를 쓰면서 고비가 오는가 하면, 또 다시 감사로 승화시켜 그 마음을 이겨내어 가는 과정에서도 감사를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상황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고, 행복과 감사는 분량이 일치하기 때문에 감사와 행복은 한 몸이고 한 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 좀 더 예뻐지면, 좀 더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질까 노력하고 애씁니다. 그런 마음들이 욕심이란 걸 알았을 때, 행복은 자족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감사노트 덕분에 많은 생각도 했고,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을 때 시작했던 감사였기에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취업이 된 지금, 일 때문에 힘든 날도 감사노트를 쓰며 기운을 차리게 되었고, 마음도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일임에도 감사하지 않고 넘어갈 때 생각이 떠올라 감사하기도 하고, 감사노트를 다시 읽어보면 기분이 너무 좋고, 그때 느꼈던 감사가 다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말 감사란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맑고 화창한 날씨에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는 구름 같은 발걸음인 것 같습니다.

버금상
<하나님 안에서> -한준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도 하박국이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날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3년 차에 이르렀던 때였습니다. 저희 가족 외에 1명의 성도님과 시작했던 교회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정기검진에서 이상소견이 나온 것입니다. 담도암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 암보다 몇 배 더 위험한 암이라는 설명도 함께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감정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뿐이었습니다.
원망만 커졌던 여러 날 후 아버지께서 수술 받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오전 7시경에 시작된 수술은 4시에야 회복실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으나,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향했습니다. 교회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소리쳤습니다.
“개척 3년 동안 새벽마다, 저녁마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전도하며 고생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복을 주진 못할망정 병을 주십니까?”
그러한 부르짖음이 극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그 누구도 끌 수 없을 것 같은 맹렬한 불을 한순간에 꺼버렸습니다. 그것은 환경이 바뀐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떠오른 한 음성이었습니다.

“내 아들도 아팠다”
“내 아들도 아팠다”라는 음성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눈물은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눈물이었다면, 이후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감사, 그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위한 사랑을 확증해보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더 이상 아무런 원망의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찬송뿐이었습니다. 눈물에 막혀 찬양하지 못했던 입술이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계속해서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청년상
<감사가 나를 찾아오기 전에> -이은형


되돌아보면 모태신앙인 나는 매일매일 감사의 중요성을 들으면서도 진정 감사로 넘쳤던 순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저렇게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저 지경까지는 가지 않다니 감사하다.’

나의 감사는 작은 안도감 같은 것들이었다.
수능시험이 끝나 쏟아져 내려오는 수험생들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의 취업준비 때를 떠올렸다. 100개가 넘는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끝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하던 그 때. 2년 가까이 성취는 없는 준비만 하던 그 때,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느긋한 편이었음에도 나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지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삶의 쓸모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보던 때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어디도 내 삶을 ̒쳐주는̓ 곳이 없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던 나도 결국 한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가장 가고 싶던 분야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조건이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탄성을 내지르며 맘껏 감사하고, 합격을 만끽했다. 재미있는 건 그때서야 내 삶의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그 때 그 동아리에 있었구나, 그래서 그런 경험을 했구나…. 모든 게 하나님의 의도 속에 있었구나. 감사하다.̓
내 삶은 100개의 자기소개서를 쓰던 때와 별로 바뀐 게 없지만, 그걸 해석하는 나의 태도가 180도 변한 것이다. 그때 이후 하나 깨달은 것은 진짜 기적은 내 상황을 역전적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어지는 것임을 알았다.
사실 감사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감사하기 위해 머리가 조금 아플 수도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평온을 가져다줄 뿐이다.
나는 야근으로 마무리하는 오늘에서 기대와 감사를 찾는다.
감사를 향해 나아가자.
어떤가, 못해도 천국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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