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찾기 위한 순례 ‘지금,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우간다는 영국으로부터 1962년 독립한 이후 수십 년간 내전과 군사독재를 거쳐 오며 끔찍한 기억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곳입니다. 故 김성종 목사는 우간다 내전을 피해 떠돌던 피난민들을 모아 딩기디 마을을 세웠고, 그의 딸 김은혜 선교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마을을 지키며 학생들과 주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한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녀는 우간다 오지를 선택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결국 남편 한성국 선교사와 자녀들을 이끌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 우간다인들의 가족이 되어 생활합니다.
또한 레바논 자흘레 난민촌은 내전을 피해 넘어온 시리아인들의 임시 정착지입니다. 김영화 선교사 부부는 그곳에서 가르치고 함께 노래하며 그 낯선 땅에서 난민들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담담하게 일상을 보여주었더라면
이 두 쌍의 선교사 부부 이야기가 담겨있는 영화 <순종>은 극적인 사건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런 다큐의 미덕은 ‘일상성’이지요.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네 삶을 비교하며 관객들이 스스로 감동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가게 만들 때 작품은 빛이 납니다. 그래서 인위성은 가급적 배제하고, 더욱 담담하게 일상의 모습을 담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에선 간혹 극적인 감정을 내비쳐 감동을 자아내려고 합니다. 내레이션이 이미 감격하여 울고 있는 공간에 관객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때로 설교 같은 인터뷰와 찬양을 통해 뭔가 당위적 정체성을 드러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만듦새의 절제가 약간 아쉽습니다. 교조적인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즉 의미화 과정을 전달할 때 작품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계속 질문하며 찾아가는 중
영화에서는 ‘순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분이 원하는 곳’으로 ‘즉시’ 가서 그들의 ‘가족’이 되는 것. 본인들의 욕심으로 고른 곳이 아닌데 왜 그곳에 가야만 했는지, 어떤 소명이 있었는지, 영화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곳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영화가 생략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분명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그들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그것이 ‘진행형’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그걸 알아가려고 계속 질문하며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겁니다.
한국교회 안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말씀 대신, 우는 약자를 실패자로 멸시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해’만 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높은 곳에 서는 것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성공지상주의가 교회에 득세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통해서 드러난 것은 ‘그분’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민낯이었음을 이제 압니다.
영화 속 선교사들은 높은 곳 보다는 낮은 곳에, 나보다는 상대편에, 이곳보다는 저곳에 서봄으로써 나를 내려놓고 ‘그분이 원하는 답’을 찾아가려 애씁니다. 어려운 자들의 ‘가족’이 됨으로써 그 답을 찾는 위대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영화 속 선교사들의 사역은 값집니다. 그들은 미적거리지 않고 답을 향해 그렇게 ‘즉시’ 찾아 나섰습니다.

어려운 때에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힘들어 울고 있는 이웃을 보곤 ‘먼저 기도하라’라는 말이 교회 안에 으레 가득합니다. 이게 혹시 최선의 자세인지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부흥하던 1970~80년대에 기독교적 ‘순종’을 권력자에 대한 ‘복종’과 ‘굴종’으로 치환함으로써, 군부 정권의 대중순화에 기여했던 어두운 과거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임택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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