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연주자,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지난 9월 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파크에 있는 퀄리티 호텔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사진 아래). 대북 지원 글로벌 단체인 국제푸른나무가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위해 마련한 환영 만찬에서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씨(40·푸른나무교회 집사)가 연주를 한 것. 송 연주자의 아리랑 선율에 남한과 북한 참석자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회를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30시간을 날아왔다는 송솔나무 플루티스트. 이런 일정은 그에게 있어 일상이다. 최근까지 5대양 6대주를 몇 달 안에 두 번이 넘게 도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것.
그러나 그에게 있어 특별한 것은 바쁜 해외 일정이 아니다. 그는 유명한 플루티스트이자 동시에 천식환자이고, 폐도 정상인들보다 좋지 않고, 왼손 새끼손가락은 남과 비교했을 때 한 마디가 더 짧다. 심장도 다리도 좋지 않다. 이런 몸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그런 일정들을 소화해 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그는 연주를 한다.
또한 성도수가 100명 이하이거나 미자립교회는 아예 사례비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자비량으로 모든 것을 소화한다. 일정만 맞으면 아무리 작은 곳이든, 먼 곳이든 가리지 않고 가서 연주한다. 드라마 허준, 이산, 동이의 OST 메인 연주자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세계적인 플루티스트이지만 관객을 가려 만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영재로 인정받기까지
“제 이름을 들으면 첫 번에 묻는 것이 본명이냐고 해요. 워낙 예명 같으니까요. 그런데 본명이에요. 성은 송, 이름은 솔나무. 특이하지요?”
브라질에서 돌아온 그를 서울에서 밝은 얼굴로 만났다.
“1988년에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13살 때 줄리어드 프리스쿨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1990년부터 94년까지 카네기 홀과 링컨센터에서 여러 번 독주회를 하고, 졸업 후 스위스 로잔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한 뒤 지금까지 100개국을 넘게 다니며 연주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OST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며, 현재 월드비전과 일본 국제 기아대책기구 홍보대사도 맡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의 능력과 경력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이 사이, 많은 눈물과 깨달음이 숨겨져 있음도 알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 사업이 부도난 후 떨어져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들어간 미국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어려웠다. 가난, 인종차별과 폭력,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로 인한 어려움 등.
“하루는 학교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있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 비난과 놀림을 피할 곳은 오직 화장실뿐이었거든요. 정말 비참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왜 누나는 똑똑하게 만들어주셔서 엄마의 사랑을 받게 하고, 나는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해서 야단만 맞게 하시는 거지요?’
그랬더니 성령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나무야, 내가 여기 있잖니, 너와 늘 함께 있잖아. 내가 너랑 친구해주면 되잖니?’
실수로 내가 태어난 게 아니냐고 다시 따져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렇지 않다. 나는 네 머리카락까지 세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널 만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며 마음속에 무언가 단단한 반석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미국 밴드부실에서 나는 플루트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가 본 밴드부실에서 한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는 어떤 소리를 좋아하니?”
플루트를 부는 제스처를 하자 건네주셨다.
“저도 모르게 뺏듯이 집어들고는 애국가 멜로디를 불었어요.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시더니 플루트를 주시고 밴드부에 나오라고 하셨지요. 실력이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과 플루트와의 만남이 한 날 찾아왔다. 그날부터 열심히 연습한 그는 들어가기 어려운 줄리어드 프리스쿨에 시험을 치게 된다. 어머니도 따라와 주지 않고, 악기도 밴드부에서 불던 야마하 플루트를 들고 혼자 줄리어드에 시험을 보러 갔다.
“모두 부모님들과 함께 와 세련된 옷을 입고 금빛 플루트를 들고 있었어요. 저는 빌려 입은 턱시도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들고 혼자 서있었지요. 너무 초라했지만 어차피 떨어질 것 열심히 연주했어요.”
몇 주 후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줄리어드에서 장학생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나님께 붙잡히세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주자로서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적이 있었던 것. 악기를 세 차례나 도둑맞았는데 입에서 원망의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마음대로 살게 되었다.
“2004년 주님이 한 예배를 통해 말씀하셨어요. ‘나무야, 네가 스위스에서 도둑맞은 게 무엇이냐?’ 제가 도둑맞은 것은 악기가 아니었어요. 예수님의 첫사랑을 도둑맞았던 것입니다.”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내전지역, 무슬림 국가나 중국, 북한까지도 들어간다.
“꿈을 갖지 못하고 살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가져간 몇 개의 플루트로 연주를 마치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처음 연주한 건 비싼 악기이고, 나중 건 싹 악기인데 어떤 악기 소리가 더 좋았는지 묻지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모습, 어떤 환경에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누구 손에 붙들린 악기인가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가 납니다. 하나님이 연주하시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기자님, 요즘에는 약을 안 먹어요.”
천식과 심장 질환 등 여러 가지 질환으로 약을 수십 년 동안 먹었던 그가 최근 약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온전히 하나님 믿고 신뢰하려고요. 제가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목숨을 바쳐야 가능한 사역인데, 사실 우리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항상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기로 했어요. 또한 자발적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을 피하고 살려고 해요. 잔고를 남기고, 돈을 모으는 일을 안 하려고 해요. 그럼 만나처럼 썩더라고요. 모으려는 시각을 버리면 하루를 감사하게 살게 되고, 더 풍요롭게 살게 되고, 미련 없이 주게 되더군요. 저는 이것을 ‘하루살이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 라이프라고 생각해요.”
최근 그가 발굴하여 세운 바순 김새미 연주자같이 ‘하나님의 연주자’를 계속 찾아내어 무료 앨범을 제작해 주고 싶다고 밝히는 송 연주자는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계속 보내져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계속 서야 하고 진행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나의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으로 ‘계속 보내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송솔나무’라는 악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연주하시는 아름다운 삶의 음악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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