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상 농업부문 수상자…정농회 주형로 회장

지난여름, 삼시세끼를 차려먹는 일상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예능 프로그램 속 오리농법을 기억하시는지? 시청자는 모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해 흙탕물을 일으키며 논을 책임지는 귀여운 오리들을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바로 그 친환경 오리농법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농부가 올해 일가상 농업부문 수상자인 정농회 주형로 회장이다.

오리에서 메기로
주 회장을 만나러 찾아간 충남 홍성 홍동마을은 추수 직전의 벼들로 온통 금빛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 자리 잡은 주 회장의 논을 찾아가며 내심 오리들이 유영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 회장은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입술로 “쁘쁘쁘” 소리를 냈다. 그 때 모와 땅 사이 한 폭 정도 길게 모를 심지 않고 비워둔 논에 흙탕물을 치며 물고기 떼가 몰려왔다. 메기 떼다.
“소리 듣고 몰려드는 거 봐요. 신기하죠? 아침에 여기 오면 집에 가기 싫어요. 이 재미로.”
그가 아이처럼 웃으며 신나한다. 올해 첫 번째로 실험하는 민물고기 양식 논으로 이른바 ‘자연순환형 민물어종을 이용한 공생농법’을 실험하는 논이다.
“내년에는 더 확산시킬 거예요. 이건 로터리 치고 모 심고 메기만 넣어주면 메기가 흙탕물 치며 알아서 농사를 지어요. 거름을 안 줘서 다른 집보다 수확량이 20% 떨어지지만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수확량이 오르고, 이 쌀은 단백질 함량이 좋은 쌀이 돼죠.”
오리에서 메기로 농법을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오리와 달리 메기는 따로 먹이 줄 것 없이 스스로 물벼룩 같은 걸 먹으니 훨씬 편하고 민물고기가 맛도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년에는 또 새로운 농법의 농사를 구상하고 있다. 점점 인력 투입 없이 편한 방식으로, 농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내가 이런 농법을 찾은 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지혜를 주신 거죠. 하나님의 지혜에서는 이게 만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해요. 지혜는 계속 나오는데 그걸 찾아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바보지.”

농업의 환경적·교육적 가치
그가 메기 떼를 바라보며 흐뭇한 얼굴로 자기 기분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내 소리에 메기가 몰려든다는 건 날 믿는다는 거예요. 세상은 다 믿어주지 않는데 얘들은 날 믿어주죠. 이게 농업이 가지고 있는 힘이에요. 농업의 제일 큰 가치가 환경적 가치고 그 다음이 교육적 가치라고 생각해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비유를 다 농경시대 비유로 하시잖아요. 직접 농사를 안 지어보면 그 느낌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신학대에서 필수로 농업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요.”
주 회장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농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저는 기술을 깨달으면 그걸 감추지 않고 남에게 얼른 줘요. 그러면 빈 공간이 생기잖아요. 거길 금방 또 채워주셔요. 그게 비결이에요. 그냥 갖고 있으면 고여서 썩어요. 그런데 얼른 주면 그 빈 공간을 금방 채워주시는 방식에 내가 맛이 든거지.”
그는 계속 부어서 잔이 넘쳐흐르듯 늘 넘치는 게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 고백이 마치 시편 23편의 한 구절 같다. “주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유기농법에서 지역운동까지
주 회장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바탕을 마련해준 곳은 농업고등학교 풀무학교였다. 친누나들이 다니던 풀무학교에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그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가르치던 학교 정신에 따라 성서, 농업 등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만난 스승 홍순명 선생은 그를 이 자리까지 이끈 장본인이다.
“제 이야기로 책을 쓴다면 그 제목은 <스승의 풀무질, 타오르는 제자>라고 하고 싶어요. 홍순명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제가 타오르는 거거든요. 그분으로부터 배움이 있었기에 1994년 오리농법부터 지금의 지역운동까지 할 수 있었어요.”
30대에 지역과 공동체를 생각하며 유기농법을 통해 문당환경농업마을을 조성했고, 마을이 안정된 후에는 마을 대표를 그만두고 지역운동으로 뻗어나갔다.
“‘생각하는 농민, 준비하는 마을’을 모토로 환경농업으로 마을운동을 일으키고 보니. 마을이 좋아진 거예요. 오리농법을 통해 마을이 협동을 배웠다고 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끝없이 주민을 설득하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할 때에 주 회장을 붙들어준 마지막 힘은 늘 신앙의 힘이었다.
“결국은 기독교 정신이에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저의 자질로는 이 길을 못 걸어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그의 친환경농업 운동은 이후 90년대 말부터 환경농업교육으로 연결됐다. 첫 사업으로 ‘홍성환경농업교육관’을 세우고 농업 교육을 펼쳤다.
“우리 사회에 잔인성이 높아진 것은 아이들이 텃밭에서 생명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예요. 텃밭은 생명의 공간이고 동물농장은 사랑의 공간이거든요. 암탉은 자기 새끼를 품고 있으면 아무리 때려도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죠. 교육은 닮아가는 것이니까요.”

유기농법이 가르쳐주는 기독교 정신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진리를 농업으로 구현할 목적으로 1976년 1월 23일 창립된 정농회는 이제 “정농 40년, 풀무와 함께 다시 40년”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정농회는 먹거리로 ‘인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시작됐거든요. 그런 정신으로 유기농이 시작된 거지, 그 기술로 쌀을 잘 팔려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이제 정농회는 교육에 주력하려고 해요. 후계 농업 지도자를 만드는 게 급선무니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연은 존재하지 않아요.”
주 회장은 농촌과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정농회가 언제든 돕고 싶다고 말한다.
“교회와 공감대를 형성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농사와 교육을 하고 싶어요. 농업의 순환 사상이 성경의 사상을 반영해요. 유기농법을 가르쳐주는 게 저의 전도죠. 진정한 유기농법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유기농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에요. 교회가 농업을 한다면 언제든 도울 생각입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삶의 마디마다 언제나 “마지막 뜻은 하나님의 힘”이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며 유기농법을 나누고 싶고, 그 길을 교회와 함께 걷고 싶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농사’라는 실천으로 농업의 빛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세상이 되는 게 그의 꿈이라고 그는 말한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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