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면서부터 나이를 먹는다. 문득 나이를 생각할 때는 ‘이만큼 살아왔다’는 삶의 길이와 함께 ‘그 나이에 맞게 사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날’까지 잘 채워가자는 스스로의 메시지도 갖는다.
“나이 먹는 일이 즐거웠다. 나이가 들면 거추장스런 욕망에서도 좀 풀려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질 줄 알았다. 오십이 넘으며 예측이 빗나감을 느꼈다. 인격은 나이가 아니라 내가 돌봐야 하는 것임을. 요즘은 나이 들며 노욕이 걱정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면서 논리적 체계적 망상이 만들어질까 말이다. 사는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이상헌, 한옥연구소 소장)
나이 듦이 저절로 성숙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생각이 굳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하는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통합을 이룰까
나이 듦에 관해 의사이며 상담가인 폴 투르니에는 “연령대에 적합한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하며 “힘과 돈을 추구하던 데서 벗어나 ‘교양’과 ‘사랑’을 키우는 데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이렇게 조금씩 바꾸어간 사람은 에릭 에릭슨이 말하는 인간발달단계의 마지막 지점인 ‘통합(integration)’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통합’이라는 말은, 살아온 경험과 지식이 잘 어우러져 실생활에 통일성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삶의 방향을 이렇게 바꾸지 않고 여전히 물질적인 욕망으로 살아가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노년에 이르러 고립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준비는 중년부터
그러면 나이 듦의 준비를 언제부터 해야 할까. <삶의 여정>을 기술한 도야마 시게히코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발이 빠른 여행자처럼 남들이 가지 못한 곳에 먼저 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발이 느린 사람은 길을 가면서 예상치 못한 보물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길을 수용하고 인정하라는 뜻으로, 살면서 얻은 경험과 기억을 소중히 안고, 중년부터 제2의 삶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도야마 교수는 지적인 나이 듦의 비법으로 ‘책 읽기’를 강조하는 한편, 다양한 연령대와 담담한 교제를 가질 것을 권한다. 또, 주제가 있는 토론과 함께 잡담도 유익해, 이를 위해 자주 초대하고 대접하라고 말한다.
흔히 책을 읽으라 하면 다 잊어버려 소용없다는 분들이 있다. 책읽기나 문화생활의 습관은 일찍 익혀두지 않으면 은퇴 후에 시작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독일 심리학자 에빙 하우스는 “하루가 지나면 74퍼센트를 잊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며 남은 지식은 어떤 정보와 결합해 자신의 스타일로 되살아나 창조 활동을 하게 하므로 잊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젊게, 젊게?
나이가 드는데 자신의 연령대를 거부하는 것을 두고 ‘아이 증후군’이라는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이나미는 노화를 인식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없다고 지적하며, 젊음에 집착할수록 헛된 욕구에 빠져들어 더 공허해지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은퇴 후에 단순 직업으로 들어가는 것을 해결책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나이 듦에서 오는 과제를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 일에도 곧 은퇴가 올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이 듦을 당당하고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규격화된 지식’을 ‘사색적 문화’로 소화해 자아를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중년기에 신앙과 문화에 입문해 내면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고전 심리학자 융은 이미 말했다.

그러면 나이 듦에도 좋은 점이 있을까
나이 듦의 특권은 무엇보다 분주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빡빡한 경제 활동과 육아에서 손을 떼고 그 많던 가사노동이 줄어든 것을 느끼며 일상을 관조하는 것, 이런 여유로운 자세로 손주들을 지그시 받아주며 얘기를 건넬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척 필요한 존재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


또 삶의 경험을 지혜롭게 나눌 때 진정한 사귐이 되고 주변 공동체에도 유익한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 든 세대가 젊은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이 듦’에 대한 준비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살아온 대로 내일을 예측하기 때문인데, 물질 사회에 빠져 산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경제적, 육체적 미래는 예측하나 정신적인 공허함은 예상하지 못해,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해 놀랍게도 폴 투르니에는 엘리야 선지자의 스토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엘리야가 젊어서는 불의 선지자라 지칭될 큰일을 해내다가 나이 들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러한 때 하나님은 동굴로 그를 인도해 미세한 바람 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 속에서 엘리야는 자신의 분노를 참회하며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선지자 엘리사를 임명하며 노년의 일을 감당했다.”
이와 같이 나이 들며 우리의 삶의 스타일은 변해야 한다. 열정과 자신감에 충만하던 데서 주변의 작은 것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자세,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을 추구하던 데서 마음과 영의 소리를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겉 사람은 낡아가나 속사람은 새롭다”는 말씀대로 말이다. 르네 마젱의 이런 말도 있다.
“나이 들며 많은 것이 우리를 떠나지만 하나님은 가까이 온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자세의 변화는 중년에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깊은 맛을 보기 어려운데 신앙과 문화의 세계가 대표적인 것이라며 아들러는 “최대한 나중까지 지속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나이 듦은 ‘미완성’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눈을 가지라고 한다.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며 주변을 용서하는 연습. 이 모두가 중년의 반환점을 도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준비다. 태양도 정오가 지나면 기우는 것처럼 인생의 중년에 ‘더 나이 듦’을 준비해야 한다.

비틀즈의 이런 노랫말이 떠오른다.

내가 64살이 되어도
당신은 내가 필요하오?
늙어서 머리가 빠져도 내 선물을 받아 주겠소?
전구가 나가면 새것을 갈아 넣고
당신은 뜨개질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함께 나갑시다.

여름엔 작은 섬에 가 민박도 하며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놉시다.
내게 대답해줘요.
그때도 내가 필요하오?
그때도 나와 놀아줄 거요?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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