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노인요양병원에서의 공연이다. 마음이 무거웠다. 세대 간의 격차로 인해 그분들의 원하는 것을 맞춰주어야 하는 부담과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함, 그리고 주고받는 반응의 약함 등을 생각하니. 무엇보다 생각하는 노래, 서정적인 노래를 주로 하는 나였기에 어르신들을 춤추게 해드리는, 웃게 해드리는, 밝고 즐거운 노래를 할 때면 내 옷이 아닌 남의 옷을 입은 듯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죽음에 대한 암담함,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무게, 그 결핍이 읽어지기에 가야 할 자리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능력도 부족하고 그분들의 원하심을 충족시켜드리기에도 부족함이 있지만 그분들을 위하는 마음, 그 진심의 힘을 믿기에 마음의 무거움을 덜고 기타를 가벼이 멘다.

온 것이 고마워
그런데 가면 ‘노래 잘하네!’ 보다는 ‘누가 와줬네!’에 더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과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례받지 않고 10여 년을 넘게 요양원에서 사역해 오신 노 목사님의 멘트가 참으로 아팠다.
“우리 어르신들은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혼자 있어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롭고 그래요.”
정이 그리운 것이다. 사람 자체가 그리운 것이다. 노년의 쓸쓸함이 감춰지지 않는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첫 곡을 들려드렸다. 기타 소리가 가사를 가릴까봐 퉁기는 듯 마는 듯 하며…. 어르신들은 어떤 노랜가 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 주셨다. 맑은 눈빛과 따뜻한 시선을 가지신 몇몇 어르신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솟아나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부르는 노래가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오늘 만나는 이가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리운 풍경처럼”

그렇게 노래의 문을 열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노래하는 중 훗날의 내가 저 어르신들 사이에 앉아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젊음은 세월에 밀려 이내 푸르른 날은 가겠지. 추억을 먹고 살 노년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감사했다. 잠시나마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부릴 수 있어서. 왠지 특권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녹슬기보다 닳게 하소서
사례는커녕 차비도 없는 공연이 늘어감에 한편 생활 걱정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그때마다 들의 꽃, 하늘의 새를 보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기타 하나 있어 줘서 고맙다. 목소리가 나와 줘서 고맙다.
여기 저기 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어 줘서 고맙다.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지상의 삶이 이러해도 저 하늘에 참 소망 둘 수 있어 행복하다.
참 휴식은 저 하늘에 있기에, 오늘 지금 여기에서 땀을 흘리고픈 욕구가 아직은 살아 있어서 참 행복하다. 또 한 번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감사하다.
“녹슬기보다 닳게 하소서!"

갖춰진 곳에 2% 더하기 보다는 덜 갖춰지고 못 갖춰진 곳에 20% 부어도 표 나지 않는 사역, 그 사역의 현재에 언제고 서 있는 ‘어린 소나무’이고 싶다.
무겁게 받아들었던 전화.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분이시기에 가벼이 둘러 멜 수 있었던 기타.
마음 열어 진심으로 불러드렸던 노래. 어르신들의 눈 속에서 보인 예수님.
그리고 내게 주신 말씀들….
한걸음 떼는 순종에 부어주신 은혜가 소낙비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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