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전염병과의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에이즈, 에볼라,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하지만 인류를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역병은 단연코 흑사병이라고 불린 ‘페스트(pest)’일 것이다. 페스트는 3차례에 걸쳐 대유행이 일어났었는데, 2차 유행이 일어난 14세기에는 유럽인구의 30%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 공포의 페스트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죽음의 원인
사무엘상 5~6장에 보면 이스라엘로부터 언약궤를 뺏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스돗에서 시작된 전염병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들은 언약궤가 옮겨간 곳마다 엄청난 사람들이 독한 종기로 죽어가자 궤를 돌려주고 전염병도 돌려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궤를 돌려받은 유대인들 5만70명이 궤를 들여다 본 것 때문에 죽는다.
70명이 궤를 들여다보는 것도 힘든데, 5만70명이 궤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궤를 들여다 본 죄로 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70명이 되었건 5만70명이 되었건 궤를 들여다 본 것 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황금 생쥐와 황금 독종
어떤 의학자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유대인들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 근거는 블레셋 사람이 궤를 돌려줄 때 제물로 바친 다섯 마리의 황금 생쥐와 황금 독종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궤를 돌려보낼 때 그들을 몹시도 괴롭혔던 독종(tumor)과 쥐를 황금으로 만들어서 궤와 함께 돌려보내며 그들의 전염병이 없어지길 기원했다. 종기의 형상을 금으로 만든 황금 독종은 이해할 만할 데, 뜬금없이 나오는 생쥐의 이야기는 의학자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기에 충분하다. 쥐라면 페스트가 아닌가!
페스트균은 쥐로 대표되는 설치류에 기생하는 쥐벼룩을 통해 옮겨진다. 만약 그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였다면 대부분의 사본 기록대로 사망자가 5만70명이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염병의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 사무엘상의 기록자는 떼죽음의 원인을 누군가가 궤를 들여다본 죄의 결과라고 적을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페스트균은 19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파스퇴르에 의해 규명된다. 페스트가 인류에 3번에 걸쳐 대재앙을 주었다고 알고 있지만, 어쩌면 최초의 페스트 대유행은 기원전 1000년경, 사무엘시대에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가톨릭대학교 의대 외래교수,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에 나오는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스테디셀러인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의료선교의 길을 묻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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