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엄마와 딸 '같은 마음 다른 빛깔'

어머니의 세대에는 가난과 많은 형제, 가족으로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없었다면 지금은 넘치는 관심으로 ‘헬리콥터맘’이라는 용어를 낳고 있다.
엄마의 살점에서 시작되어 한 몸으로 지내다 세상에 나와 엄마의 웃음을 자신이 웃는 것으로 알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이. 이런 딸을 안고 엄마들은 ‘이 아이도 아이 낳는 고생을 하겠구나’하며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험한 세상에서 지켜줘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고 한다.
이후 딸은 엄마를 모델로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고, 엄마들은 정서적 일체감을 가지고 딸을 대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사이
그러다 “사춘기를 맞는 딸은 엄마를 보호해주던 울타리에서 넘어야 할 벽으로 여긴다”고 하며 그것은 딸이 이제 엄마의 분신이 아닌 독립된 자기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에서 저자 한성희(정신분석 전문의) 씨는 말한다. 날카롭고 깊은 상처의 말을 던지는 것도 엄마의 과도한 관심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일환이라는 것.

그러나 이즈음 엄마가 딸에게 삶의 힘든 얘기들(남편, 가정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을 하며 심리적으로 의지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착한 딸 노릇을 하며 독립이 어렵게 된다. 이런 경우의 엄마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삶을 딸이 살아주길 바라며 들쭉날쭉 사랑을 보여주게 된다고 한다.
엄마의 기대대로 훌륭한 딸이 되는 것은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갈등과 분노가 전달되고 이어진다면 어떨까?

신달자 시인은 그의 에세이집 <엄마와 딸>에서 이 둘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표현한다. 몸 바쳐 사랑하기에 격렬하게 분노하며, 상처주고 미안해하는 가장 가까운 사이로 묘사된다. 딸을 자신으로 보는 엄마들은 끊임없이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 간섭하고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묘한 관계… 바람직한 한 걸음
이렇게 성인이 된 딸들은 애증이 오가는 엄마에게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나?
어릴 때는 힘이 없고 약해서 엄마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더 이상 그러지 말고 엄마의 상처와 결함을 받아들이며 바른 사랑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 방안으로는 엄마가 살아온 삶과 내 삶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엄마의 생각을 참고하되 내 생각을 좌우하지는 않게 말이다.
한편 딸의 독립 욕구를 엄마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주면 멀어졌던 엄마와 딸의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가까워진다고 한성희 전문의는 말한다.
또한 엄마가 자신을 ‘희생모드’로 끌어가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엄마를 흔희 ‘희생’의 대명사로 말하지만 엄마로서의 희생은 사랑이 바탕이 된 보람있는 일이므로, 희생자나 가해자의 유형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의할 일은 남편이나 시댁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말을 할때다. 이러한 상처의 고리는 과감하게 끊지 않으면 계속 이어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어머니’
영화감독인 주인공 마르게리타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을 앞둔 어머니가 눈에 띄게 나약해지는 것을 보며 자신마저 무기력해지며 괴로워한다.
라틴어 교사로서 총명하고 우아했던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가고 쇠약해짐을 바라보는 것도 힘든데 사춘기 딸이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며 멀어지는 느낌을 감당하기 어려워 전 남편을 찾아간다. 그러나 남편과 서로 다른 마음으로 이야기가 겉도는 것을 느끼자 마르게리타는 홀로 세상에 있는 것처럼 쓸쓸히 돌아오게 된다. 마치 중년 여성의 뒷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후 어머니의 장례에 제자들이 나타나 따스한 격려를 주던 분으로, 잊지 못할 인생의 교훈을 남긴 얘기를 들으며 어머니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면 엄마가 살아계신 동안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나에게 준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발견이 될 것인가.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장 30절)
가정사역자 제임스 답슨은 <내 딸을 여자로 키우는 법>을 통해 대중문화가 여성의 몸을 공개적으로 노출하여 왜곡된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선정적인 문화가 딸들을 병들게 함을 지적하며 ‘여자의 힘이 성적 매력’이라고 부추기는 현실에서 오히려 예절과 인격적으로 당당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딸에게 비위 맞추는 또래 같은 엄마로 권위를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먼저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딸이 건전한 사춘기를 지내기 위해 엄마는 어떻게 도와줄까?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는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엄마가 일상 속에서 딸과 분명한 의사소통을 하며 지내는 생활이 서로의 마음을 아는 길일 것이다.

딸과 엄마의 유익한 티타임
다과회 놀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시간은 이웃 친구 모녀를 정식으로 초청하여 시작된다.
식탁이나 티 테이블에 예쁜 천으로 된 테이블보를 씌우고 차를 준비한다. 이것은 딸을 여성으로서 세워주는 엄마의 배려로서 귀한 찻잔을 사용하여 테이블에서 예절교육을 시키기에 유용하다.
평소에 자유롭고 편한 스타일과 좀 다르게 옷도 갖춰 입고 서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적절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티타임이 사춘기 이전 딸이 여성으로서 자존감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객원기자 전영혜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