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목회자의 삶을 소개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평생 청빈하게 희생, 나눔, 섬김의 삶을 살다 가신 충무장로교회 원로 박종렬 목사님이십니다.
충청도의 유교 가정에서 태어나 15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로 예수님 믿는다고 쫓겨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일본 경찰들에 붙잡혀 끌려갔는데, 일본경찰이 묻습니다.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가 높으냐, 네가 믿는 하나님이 높으냐?”
박 목사님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이신데, 당연히 하나님이 제일 높으신 분이다!”
바로 고문실에 끌려가 꿇어 앉혀져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 때 박 목사님의 기도제목은 ‘주여, 스데반처럼 순교하게 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그렇게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데 그냥 주여, 주여, 기도만 하니까, 때리던 형사가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 봤다’고 했답니다.
지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신부전으로 온 몸이 퉁퉁 부어 4년 동안 병석에 누워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그 당시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조선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무조건 끌고 갈 때였습니다. 일본 경찰이 박 목사님을 데리러 와서 보니까, 다 죽어가고 있어서 데려갈 수 없었지요.
고통 가운데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데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모님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동네 사람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나서 들어보니,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해방됐다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감전된 것 같았습니다. 정수리를 뜨거운 불로 태우듯, 머리서부터 목구멍으로 그 불덩이가 차차 밑으로 내려오며 온 몸을 태우는데,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4년 동안 ‘질병의 보자기’로 남편을 싸서 일제의 총알받이로 못 가게 막아주신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그때에야 깨닫고 눈물로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박 목사님은 일어나셨고 혼신을 다해 목회하며 목회자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평생 청렴 결백의 삶을 살다가, 돌아가실 때는 그 시신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했습니다.
그분이 남긴 시 <삶의 의미>를 음미해 봅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생명보다 귀하랴만
주의 분부 수행하라 허락하신 목숨이니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은 사명(使命)인가 하노라

먹거나 마시는 건 생존의 수단이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가장 큰 목표인저

성도의 본무(本務)는 예수님을 높임이매
이를 이룬 생애면 길든 짧든 승리로되
이에서 어그러지면 살든 죽든 헛된지고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아름다운동행 감사운동위원장으로 다양하게 감사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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