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씨앗출판사 임영국 대표

“나의 청진기로 조선 사람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내 심장도 조선과 함께 뜁니다.”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난 닥터 셔우드 홀의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뒤를 따라 아내 닥터 메리안 홀과 함께 1924년부터 1963년까지 한국과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아내와 부모, 형제들과 함께 지금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묻혀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까닭은 그 셔우드 홀이 쓴 회고록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기 때문. 그러나 그 책이 처음부터 베스트셀러는 아니었다. 780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책이 동아일보사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고, 절판되었다.
그런데 한 의대생이 동아일보사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고 의료선교사의 비전을 더욱 깊이 품게 되었던 그는 책이 사장되기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해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이 책이 꼭 다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다시 출판할 계획이 없으시다면 제게 판권을 넘겨주십시오.”
그렇게 전화를 건 지 11년이 되었다. 의대생이었던 그는 어느 덧 의사가 되어 있었고, 그런 그에게 시효가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얼마든지 재계약해 출판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둘러 계약과 출판을 진행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좋은씨앗출판사의 <닥터 홀의 조선회상>. 처음 인쇄한 책은 이익을 하나도 보지 않고 원가 8000원만 받고 팔았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한 것이다.
꿈을 품고 도전했던 그 의대생은 꿈을 이뤘다. 개인의 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의료선교의 꿈을 품었다는 후배들을 살면서 지금도 계속 만나기 때문이다.

의료선교를 결심하고 나서
충남 아산에 위치한 미래한국병원 임영국 원장(광주동산교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처음 책을 읽고 기도했지요. ‘하나님, 제가 전문의가 되면 꼭 절판된 책을 제 손으로 내게 해주십시오’ 기도했어요. 조선회상은 한 가정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고귀한가를 보여주는 데 있어 손색이 없습니다. 지금 셔우드 홀 가정, 여섯 식구들의 몸은 양화진에 묻혀 있지만, 그들의 삶은 제 가슴에 묻혀 제 심장을 아직도 쿵쾅거리게 만들지요. 전 나중에 천국에 가면 셔우드 홀의 어머니이신 로제타 홀 선교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요. 남편과 아이를 잃었는데도 조선을 버리지 않고 의료선교를 펼치셨던 그분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나님께서 의료선교를 하길 원하신다는 소명을 받고 의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장로님이신 아버님께 찾아가 결심을 말씀드렸어요. 그 때 해주신 말씀이 단순히 직업으로만 선택하는 거면 반갑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순교할 각오로 그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조선대 의대에 합격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공부했지만 임 원장은 한국기독대학인회(ESF) 선교단체 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의료인 그룹인 의료인선교회(EMF)도 탄생시켰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면서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전도를 하고, 일주일에 4~5팀 성경공부 인도와 일대 일 성경공부를 했다고. 또한 한 달에 신앙서적 6권은 무조건 읽었다. 그러면서도 성적장학 수혜자 명단에도 거의 이름을 올렸다.
“의대 수업이 일주일에 57시간 가량이었어요. 그래서 전도하고 후배들과 말씀 나누는데 57시간을 드리기로 한 거지요.”
졸업한 이후에 전남 영광에서 복음내과를 개원하고 나서도 여전히 똑같이 살았다. 복음내과는 바로 학창시절 만난 신앙의 동역자들과 선교사역을 펼치기 위해 세운 병원으로, 하루에 4백여 명의 환자가 올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주일에는 교회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왕진을 가고, 또한 환자들을 전도했다. 왕진비는 받지도 않았다. 진료시간이 다 끝난 후 찾아간 말기암 환자에게 복음을 전했다.
“평생 교회 욕을 하셨던 분인데 그날 복음을 전하니 눈물을 흘리셨어요.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시고는 그 다음날 돌아가셨지요.”
지금은 후배들에게 복음내과를 부탁하고 충남 아산 미래한국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똑같이 살고 있다. 진료를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어 좋은씨앗출판사 대표로 책을 만들고, 의료선교단체 회원들을 양육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열심히 전도한다. 한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그 생명을 지키는 일을 다방면으로 하고 있는 것.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지만 중심은 정확하다. 영혼구원. 그 중심으로 그의 시계는 돌아간다.

다윗과 요나단 같은 믿음의 친구
“해외로 의료선교를 나가고 싶었는데 친구가 먼저 나가게 되었어요.”
함께 병원을 설립하고, 원장을 지냈던 정성 선교사(가명)는 가족들과 함께 동아시아 C국에 의료선교를 떠났다. 돕는 것이 아니라 동역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임 원장은 생활비를 포함해 모든 사역비용을 감당했다. 지금은 잠깐 귀국해 함께 진료를 하고 있지만 정 선교사는 또 동남아시아로 선교를 나갈 계획이다.
“대학교 때 정 선교사와 짝을 이뤄 캠퍼스에서 전도하러 다녔을 때부터 ‘네가 가면 내가 남아서 돕고, 내가 가면 네가 남아서 돕기로 하자’며 동역자가 될 것을 약속했지요.”
믿음의 친구, 꼭 다윗과 요나단이 연상된다. 젊어서는 캠퍼스 전도를, 그리고 의사가 되어서는 의료선교를 함께 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선교회에서 선교사 20개 가정을 후원하는데 임 원장은 거기에다 개인적으로 8개 가정을 더 후원하고 있다. 병원과 출판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금의 대부분은 거의가 복음 전파나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에 사용하고 있어 그의 삶은 검소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다.
“가족들 불만은 없나요?”
나올 법한 질문에 아내가 캠퍼스 선교할 때부터 동역자임을, 그리고 세 명의 자녀 중 둘이 이미 의대에 진학했고, 막내도 의료선교사 비전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 셔우드 홀 일가도 대를 이어 의료선교를 했는데.
“인생의 하프타임에는 저도 선교지에 나가서 의료선교 하며 살고 싶습니다. 100년 전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들처럼. 삶으로 진짜 환자들을 사랑하고 위해야 합니다. 환자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오히려 배울 것이 없는지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며 작은 손이라도 실천하고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임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선회상> 마지막 페이지에는 셔우드 홀이 조선을 떠날 때 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조선 친구들이 기념품으로 준 태극기를 꺼내 나뭇가지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그 주위에 모여 선 후 목소리를 높여 ‘만세!’를 외쳤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1만 년을 살라’는 뜻에서 만세를 외치는 것처럼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미니 해스킨즈의 ‘연의 문’이란 시를 손잡고 낭송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는 연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했네.
빛을 주시오.
그래야 내가 미지의 세계로 안전히 걸어 들어갈 수 있소.
그는 대답했네.
어둠에 들어가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오.
그러는 것이 빛보다 나으며 안전할 것이오.


미래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와 어둠의 세계이지만 하나님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삶을 살 때 빛보다 안전하다. 그래서 섬김의 삶은 가능한 것이다. 셔우드 홀의 마음과 임 원장의 마음이 시 하나로 맞닿아 있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