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순종에 대한 찬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칠 때,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이스라엘을 과거의 다윗 왕조처럼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수 곁에 있던 제자들까지도, 이제 예수가 큰 권세를 얻고, 자신들도 예수를 통해서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예수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기쁘고도 착잡한 종려주일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알고 믿고 있는 우리는, 이 시점에서 예수의 행보를 묵상하면서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시고, 어떤 고통과 죽음을 당하게 되실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저 너머의 부활을 생각하며 기뻐할 수만도 없는 시즌을 지내게 됩니다.
게다가 다른 누구보다, 고난과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 자신의 마음도, 환호하는 군중들과 제자들 속에서, 큰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셨을 것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높이신 하나님
예수의 이름이 높아지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욕망하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고 유명세를 얻어서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칭찬을 받는다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자기를 비워 야훼의 종이 되시고, 예수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임마누엘로, 자신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를, 하늘로 끌어당기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과 예수의 순종에 대한 찬미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를 향해서 사람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것은 자신의 삶과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구원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이름 없는 예수를 향한 찬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고, 이익을 구하기 위해 환호하는 군중들과 제자들 속에서,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우리 인간세상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행진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는 자세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는 설령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더라도 나만은 웃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떨치고 싶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의 개선행진과 십자가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내 욕심을 저울질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께서 십자가로 향하는 그 행렬에 함께하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이름, 우리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예수를 영접하고 뒤따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 상임공동대표와 국민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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