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찾아본 ‘단순함’- ‘뷰티 인사이드’와 ‘카모메 식당’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한 남자의 사랑 분투기를 다룬 <뷰티 인사이드>라는 판타지 멜로영화가 작년에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잘생긴 멋진 남자로, 때론 추레한 남자로 변하는 주인공은 젊은 남성이라는 영역을 넘어 성별·노소·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러니 연애를 비롯한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해 여성에게 호감을 샀는데, 그 다음 날 데이트하려니 남성은 고사하고 아예 할머니로 바뀌어 버리기도 하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그러면서 그려지는 난처한 상황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줬던 작품이다.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주인공이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 심각한 고민을 토로한다. 바로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거다. 원래의 모습이 없으니 어느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현대인의 자화상 ‘내가 누구지?’
사실 판타지로 극화해서 그렇지, 고민하는 주인공의 저 모습은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포장하고 과장하는 자기 PR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두 가지 ‘나’와 끊임없이 충돌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 혹은 자기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identity)와 남이 생각하는 또는 보여지는 ‘나’, 즉 페르소나(persona). 뭐가 진정한 ‘나’란 말인가? 페르소나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현대인은 아이덴티티의 위기에 빠졌다. 확고한 자존감이 없을 때,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선택되길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체성(identity) 위에 가면(persona)을 덧씌운다. 그 가면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가볍게는 명품 옷이나 가방·신발·시계 등등부터 학력과 직업, 더 나아가 가족과 인맥까지. 더군다나 SNS가 발달하면서 그 가면에 대한 집착은 더욱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걸 봤고, 저걸 먹었으며, 요 사람을 만났다는 걸 부지런히 올린다. 그런 꾸밈을 통해 ‘나’라는 자신을 결정해버린다.

아, 그래서 복잡하게 살게 되었군
소규모의 신분제 사회였던 과거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직업과 배필, 그리고 인맥까지 이미 그 영역이 대충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남에게 선전하며 알아달라고 수고할 필요가 적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기 앞길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실패하면 좌절감과 함께 고통스러운 고독에 빠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현대인은 지속해서 새로운 가면을 쓰게 됐다.
이런 현대사회에, 자발적 고독을 통한 고독의 힘을 강조하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배철현의 주장은 신선하다. 덧씌워진 가면을 벗고, 발가벗겨진 나와 독대하는 시간. 바로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사회적 죽음이라고 오해되었던 고독이, 개인적 소생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워야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카모메 식당>이라는 작품이 있다. 사치에라는 일본인 여성이 핀란드 수도 헬싱키라는 낯선 땅에서 주먹밥을 주메뉴로 파는 일식당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과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소박한 식단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비록 손님은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자길 버리고 이것저것 꾸며 섞을 생각(fusion)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모든 상념을 ‘포기해 버린’ 젊은 여성과 수화물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 이 두 여행객이 합류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여러 양상을 그려내고 있다. 허세와 고정관념, 그리고 짐을 걷어내고 그녀들은 자신들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즉,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들의 절제된 일상.
그녀들의 절제는 결코 욕망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시류와 주변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습관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욕망의 주도자가 되겠다는 적극적인 선언이요, 혼돈의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스펙과 경험, 인맥 ‘쌓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회 속에서 그녀들은 더함이 아닌 뺌을, 채움이 아닌 나눔을 통해 자존감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들의 삶이 시대를 거스르는 거 같지만, 사실 현대사회가 거꾸로고 그들이 바로 가는 거 아니겠는가?

임택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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