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을 일’ 목록부터 만들자

‘하지 않을 일’의 목록을 만든다?
이 또한 할 일 하나를 더하는 것 아닌가. 얼핏 들으면 그런 것도 같지만, 이 목록을 만들면 그동안 삶에 더해진 무게들을 덜어내 더 가벼워질 일만 남는다. 도시에서 여유롭고 느린 삶을 살기 위한 제안. ‘슬로우(slow)’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환경 및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쓰지 신이치 교수(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교)를 따라,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는 ‘슬로우 라이프 플랜’을 소개한다.

시계 차지 않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손목시계를 차지 않고 출근하는 날을 만든다. 그리고 집에 시계가 없는 방을 만든다. 혹은 집에 있는 시계의 갯수를 줄인다. 배꼽시계와 해시계에만 의지해보는 것이다. 이 시도에 슬슬 익숙해져 이를 즐기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몸과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지식과 이론에 치우친 이야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주방에 들어가기, 어린아이나 노인들을 돌보기, 꽃과 야채를 가꾸어 보기, 전기를 끄고 촛불을 밝히기, 아로마 초를 켜고 욕조에 들어가 보는 것, 책과 신문을 던지고 눈물 쏙 빼는 영화에 빠져보기 등을 추천한다.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버스나 전철에 급히 뛰어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흘려보내기’의 요령을 배우는 삶이다. 전철을 한 대 떠나보내는 것에 아쉬움보다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음 전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작은 여유 시간에 길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시 한 수를 읊어보는 것도 괜찮다. 이는 전철에 뛰어올라 절약하는 시간보다 분명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이를 위해 조금 여유를 갖고 집을 나서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할 듯.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잠자는 시간 아까워하지 않기
잠자는 시간도 아껴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잠을 자는 것=쓸데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빈곤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로지 잠자기 위해 자는 것을 해보라. 그렇게 얻은 상쾌함은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효과를 얻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일단은 수면시간을 줄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침실을 깔끔하게 비워두고 잠자기 전 두 시간은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고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일 할 수 있는 일 오늘 하지 않기
이 항목은 예수께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마태복음 6:34)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와 정반대의 생각인 이 말은 ‘내일’에 대한 긍정이며, ‘오늘’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이다. 내일 할 일보다 오늘 할 일을, 나중의 일보다 ‘바로 지금’의 일이 더 소중하다는 사고방식에는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현대사회에 팽배한 ‘지금의 나는 갖춰져 있지 않다’는 ‘지금의 자신에 대한 부정’을 넘어, ‘지금 이 순간’의 자신 그대로 존재하라는 것.

쓰지 신이치는 “뺄셈이 만들어내는 삶의 질”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우리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 삶의 기반인 생태계를 파괴시켰고, 세계 곳곳은 치열한 경쟁으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제는 많이 만들고 더 가지기보다 적게 만들고 적게 가지는 방식으로, 생태계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들 타이밍이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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