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보급 120년, 대한성서공회 발자취 돌아보기

‘동방의 은둔의 나라, 쇄국정책으로 인해 외국인과 접촉만 해도 형벌을 받는 조선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는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미리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했기에 한국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자국어 성경을 갖고 있던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선교역사는 성서를 번역하고 배포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 복음화를 위해 시작된 성서사업이 120주년을 맞았다. 대한성서공회는 지난 11월 24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기념예배 및 학술 심포지엄, 당일 성서전시회를 갖는 등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영국성서공회 도움 받아 시작된 성서사업
“한글 성경 번역과 보급의 역사”란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박동현 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의 ‘한국 교회에서 개역 성경이 갖는 의의’와 옥성득 UCLA 교수의 ‘대한성서공회 창립 120주년 회고와 전망-해방 이후 역사(1945~2002년)를 중심으로’라는 강연을 통해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토대가 되어 온 개역 성경과 성경의 번역 및 보급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대한성서공회의 시작은 영국성서공회의 조선지부가 한국에 설립되던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호 개방으로 조선의 빗장이 열리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한반도 안팎에서 신약성경을 부분적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다 영국·미국·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연합하여 한국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성서 번역 사업이 탄력을 받았다. 1900년 <신약젼셔>가 번역되고, 그로부터 11년 뒤, 최초의 신구약 한글 성경인 <셩경젼서>가 출간되었다.
그 와중에 번역자 회의 참석차 목포로 향하던 아펜젤러 선교사를 선박 사고로 잃기도 했는데. 이처럼 열악하고 낯선 한국 땅에서의 성서 번역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양 선교사들의 헌신과 성서공회의 지원을 힘입어 울며 씨를 뿌린 시간이었다.

성서 반포 중단 위기와 전쟁의 시련
열매를 거두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이다. 대한성서공회는 서울 종로에 성서회관을 건축하고 많은 권서들을 모집하여 전국적으로 성서 반포 사업을 펼쳤다. 그러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당국의 관리 하에 성서 반포 중지령이 내려지고, 급기야 1941년 성서공회가 해체되면서 모든 성서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4년 후, 광복과 함께 가까스로 성서사업이 재개되었지만 수년 후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다시 한 번 시련을 겪게 된다. 성서회관은 두 번이나 불타고 파괴되었고, 자료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성서사업은 멈추지 않았다. 피난지 부산에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및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립 넘어 세계 돕는 성서공회
3년에 걸친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서울로 복귀하여 성서사업을 다시 이어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나라 전역의 성서 보급을 위해 농촌 및 군대, 교도소 등에 성경 반포 사업을 활발히 펼쳤고,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과 맞물리면서 세계성서공회로부터 도움을 받던 원조를 중단하고 재정 자립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후 아시아와 그 밖의 나라들에 성서를 수출하면서 도움만 받던 성서공회가 이제는 도움을 주는 성서공회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대한성서공회 집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1억6천만부의 성서를 해외에 보급했고, 해마다 240개 언어로 된 성서를 120여 개 국가에 700만부 가량 제작해 보내고 있는 것. 지난 2006년부터는 ‘Bible A Month Club’ 회원 제도를 만들어 성경을 구하기 힘든 지구촌 이웃들에게 매달 한권의 성경을 선물하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백년대계, 앞으로의 과제는?
오늘날 전 세계에 보급되는 성서 다섯 권 중 한 권은 한국에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한성서공회의 해외 출판 사업은 날로 성장하고 있지만, 최근 국내 출판 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국내 성서사업은 새로운 과제를 안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보자.

- 젊은이들에게 성서 전하기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버전의 성경 번역이 진행 중이다. 교파를 초월한 신진 학자 41명이 참여하여 번역중인 <새한글 성경전서>는 2020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 다매체 시대를 위한 콘텐츠 개발
2012년 출시된 스마트폰용 <모바일성경>과 함께 성서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그림, 사진, 지도, 동영상 등의 다양한 자료들을 본문과 함께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발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매체에 익숙한 청소년을 위한 3차원 영상 성경, 성서 게임 및 웹툰,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온라인 그림 성경도 출시해 미디어 시대의 좋은 선교 도구가 될 것을 내다 본다.

- 통일을 앞당기는 성서 사업
‘북한 동포에 100만부 성경 보내기’ 운동을 통해 북한의 성서 사업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더불어 지난 4월엔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성경 1,000부를 기증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조선의 빗장을 열었듯이, 성서 사업을 통해 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필요하다. 탈북자를 위한 성서 공부 교재 및 북한의 언어로 된 신학 교재 등의 개발은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대한성서공회 창립 120주년 기념 한글 성서 전시회>
함께 진행된 ‘한글 성서 전시회’에서는 총 73종의 한글 성경들이 전시되었는데, 그동안 한국의 성서사업을 도왔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등 외국의 성서공회들이 보관해 오다가 기증해 준 초기 희귀본 한글 성서들이 전시되었다. 최초의 우리말 단편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1882년·사진), 최초의 국내 공인역 <신약젼셔>(1900년) 등이 전시되었다.

우수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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