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영 선생이 작곡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찬양곡은 들을 때마다 경건한 감명을 받습니다. 이 노래가 작곡되어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특별한 상황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고, 남과 북으로 갈린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이른바 ‘6·25 사변’이라는 한국 전쟁이 일어난 때였습니다. 북한의 기습 작전에 어쩔 줄 몰라 모두가 갈팡질팡했고, 나라가 온통 피난길에 올랐고, 정부는 부산으로 피난해 있던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의 포탄 소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들어야 했으며 사방은 캄캄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배는 드려야 했습니다. 아니, 그러한 상황이기에 예배가 더욱 절실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면서 작곡가 나운영 선생이 시편 23편에 곡을 붙였습니다. 진해 피난 교회에서 나운영 선생이 지휘한 성가대가 처음으로 부르던 날, 그 예배에 함께 한 이들은 모두 울었다고 합니다. 지휘자도 성가대원도 울고, 예배에 함께 한 교인들과 이승만 대통령 부부도 울었다고 합니다.

목자 찬양
이 시편은 언제 읽어도, 언제 들어도 곱고 아름다운 목동의 노래와도 같습니다. 고결하고도 심오한 노래,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는 감동 넘치는 노래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교회에 속한 교인이든 아니든 이 시편만은 익히 알려진 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깊이 새겨보면 이 시편 23편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닙니다. 속된 세상에 얽매여 살아가는 세상 사람과 달리 ‘거룩한’ 차원의 세계에 닿아있는, ‘거룩한’ 성도만이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읊을 수 있는 찬양입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목자와 양’의 관계를 올바로 알고 고백함이 없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노래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자로 알고 그를 받아들이는 ‘관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름지기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고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다른 어떤 것, 다른 어떤 존재를 목자로 삼지 않으며, 찬양하지 않고 또 찬양하지 못합니다. 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호와 이외의 다른 것을 믿는 우상숭배입니다.

믿음의 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찬양하는 양의 자리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목자에게 맡깁니다. 이 고백의 근거는 자기 판단이나 자기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빼어난 분별력이 있고 동원할 자원이 있다고 여겨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근거는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시편은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합니다.

뉘우침의 시
울음의 바다가 된 그 피난지 교회 예배에서 이들이 흘리게 된 그 눈물의 뜻을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잔인한 전쟁의 시련, 알 수 없는 삶의 신비와 기적, 감당할 수 없는 은총…, 이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눈물로 흘러 나왔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노래를 듣고 모두가 울었다면, 그것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그 첫 구절에 기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겸허와 거기에서 솟구쳐 올라온 자기 한계와 죄에 대한 뉘우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울며 눈물을 흘렸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알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깊이 뉘우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와가 아닌 다른 누구를 더 높이 받들었던 것을 깨닫고 뉘우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더 갖고 싶고 더 얻고 싶은 허욕에 찌들어 엉뚱하게도 ‘내게 부족함이 있다’고 우겼던 자기 욕망의 탐닉과 망상을 뉘우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을 지은 뚜렷한 인물 가운데서 다윗은 누구보다 기복과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고 오만과 겸허를 오가며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우리에게 감동의 빛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기의 부족과 과오와 죄를 깊이, 깊이 뉘우칠 때입니다. 다윗도 이 시를 지으면서, 자신의 한계와 오만과 죄를 가슴 아파하며 뉘우치고 또 뉘우쳤을 것입니다. 여호와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탐욕에 탐욕을 더하고 술수에 술수를 더하고자 했던 것을 뉘우치며,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다시 읊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질문
시편 23편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로하지 않으며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 시편은 차라리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신데’ ‘내’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신을 향하여 질문하게 합니다.

박영신
사회학자. 평생 연세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명예교수이다. 10여 년 동안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요즈음은 예람교회 공동목회를 하며 진지하게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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