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바른 농사 짓겠습니다” 다짐…30년 유기농업 지킴이로 살아

한 부부가 있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믿음으로 ‘바른 농사’를 지을 배우자를 찾아 만난 짝이었다. 결혼식 날 뜻을 같이 해 온 유기농 농민단체 정농회 식구들 앞에서 부부는 이렇게 맹세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평생 바른 농사를 짓겠습니다.”
우리원농장·식품(www.wooriwon.com) 전양순 대표와 강대인 농부 부부는 그날 작정한 그대로 살았다. 벌교에 내려가 척박한 땅에 모를 심으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을 그대로 지켰다. 5년 전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에도 생명처럼 지키고 산다.
그렇게 산 지 벌써 30년. 발간 볼의 아가씨는 이제 주름살과 희끗희끗 흰머리를 소유하게 되었고, 바르작거리고 엄마를 기다리며 논에서 울어대던 5명의 자녀들은 장성하였다. 아쉽게도 함께 꿈을 일구던 남편 강대인 농부는 지금은 곁에 없지만, 전양순 대표는 큰딸 강선아 대표와 함께 오늘도 논을 지키며 ‘생명의 농사’를 짓는다.
‘농사란 사람의 손을 빌어 하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란 생각으로 평생을 함께 했던 남편 강대인 농부의 뜻을 따라 오늘도 ‘하늘의 뜻’을 몸으로 일구어 사람들에게 전한다.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
“평생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잠들었어요. 논매러 가고 밭 갈러 가면 아이들 젖도 잘 못 먹였어요. 미음 쒀서 먹이고. 커다란 고무 대야에 아기를 넣고 논일을 하면 어떤 때는 대야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소나기라도 오면 아이가 비에 흠뻑 젖었지요. 농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정말 수확물도 없고 벼멸구가 와서 몽땅 먹어치워 남편과 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기도 했지요.”
아이들이 원망하지 않더냐고, 후회한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가슴 아프다고 생각했으면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강하게 잘 자라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커주었어요.”
초등학생 때 만난 김종국 선생님이 전 대표가 유기농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스승이었다. 고향으로 귀농한 분으로 교회가 없는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유기농업의 꿈을 나누었다. 전 대표도 그 꿈을 품게 되어 정농회 회원이 되고 풀무원공동체에 들어가 성경공부를 하며 유기농업을 배웠다.
정농회를 창립하고 풀무원농장을 세운 원경선 원장으로부터 “바른 먹거리가 생명을 살린다, 신앙인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같은 정농회 회원으로 만난 강대인 농부는 아버지가 농약 중독 후 돌아가시자 곧바로 농약과 화학약품을 집어던지고 유기농업을 시작한 이였다.
“하나님께서 ‘유기농 농부’로 만드시려고 미리 계획하신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가르침을 되새겼어요.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 이웃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전해주자.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굶어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 이런 단단한 마음 없이는 못 합니다.”

상생의 농법
“농사를 굳이 나눈다면 그저 풀만 키우는 하농(下農)과 곡식을 거두는 중농(中農),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상농(上農), 사람을 기르는 성농(聖農)으로 구분하지요. 성농으로 만들어진 곡식은 아픈 사람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상생을 기본으로 하는 농법은 제초제나 농약을 쓰지 않고 깊은 정성과 사랑으로 생명력 있는 농작물을 일구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모든 국민이 값싸게 사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부부는 외쳤다.
입소문이 났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험 끝에 1995년 드디어 국내 최초 벼유기재배 품질인증을 획득했고, 백초액을 개발해 특허를 받고, 쌀겨농법을 도입 개발하여 유기농 쌀 생산량을 늘렸다. 친환경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과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업 실천 농장을 개방하여 지금은 연간 5천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다녀가고 있으며, 3만4천평의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
“병충해는 어떻게 막아요?”
“벼 자체가 건강하면 병충해가 와도 이겨낼 수 있어요. 비료를 주지 않는 대신 쌀겨와 깻묵, 백초액 등으로 만든 영양액을 주고, 농약 대신 병충해에는 현미식초나 백초액, 칼슘과 목초액을, 벼멸구에는 현미식초, 백초액, 마늘유 등을 만들어 뿌리지요. 생명역동농법으로 온갖 해충이 덤비지 못하게 하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면 됩니다.”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강하고 단단하게 키워 가신 것처럼 벼를 강하고 단단하게 키우면 병충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직거래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
사회가 다양화되고 분업이 확대된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것을 소비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알고 신뢰를 가질 수 있다면?
“농사만으로는 버틸 수 없어 농사를 통해 얻는 수확물을 발효시켜 효소를 만들고 장을 담그는 등 식품을 만들었어요. 쌀과 함께 그걸 판매하면서 25년 전부터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해왔어요. 유기농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시절부터 직접 소비자와 직거래를 했지요. 또한 지금도 하고 있는 농업교육이나 농사체험을 그때부터 했어요. 벌교로 초청해서 보여드리고 함께 만들어보는 거지요. 그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저희가 있는 거예요.”
이미 농업부문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고, 최근 25회 일가상 농업부문에서 수상한 정양순 대표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라는 확신과 함께 하는 남편, 그리고 바른 먹거리를 만들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들을 믿어주었던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대인 농부의 기도
2010년 남편이 훌쩍 하늘로 떠나갔다. 몸이 쇠약해진 강대인 농부가 다시 절식하며 기도 하던 중이었다. 옆에 놓여있는 일기장에는 ‘이 땅의 아이들이 유기농 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되길’, ‘유기농업이 확산될 수 있길’ 그런 기도제목이 쓰여 있었다.
“내 농사만 갖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농사가 이 땅 곳곳에서 맥을 이어가기를 평생 기도했지요.”
아버지의 빈자리는 딸 선아 씨가 메웠다. 원래는 교육 쪽으로 공부를 더 하려고 했으나 강 농부가 소천하기 전 부모님을 돕기 위해 잠시 고향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강의를 듣고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제대로 아버지 강의를 들은 것은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거 제대로 해야겠구나. 유기농업을 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뛰어들었지요.”
강선아 대표가 합류한 후 좋은 일들이 계속 생겼다.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만든 125g 소포장 쌀 ‘키스미’가 호평을 받는 것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젊은 강 대표의 에너지가 더해졌다. 경영에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서 그 고된 농사일을 하고도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한다.
“농사일 힘들어요. 허리도 많이 아프고. 그런데 일하고 나면 개운하고 행복해요. 후회요? 안 해요. 그냥 이게 맞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요. 버티다 보면 분명히 ‘천천히’ 답이 나와요.”
어머니와 딸의 삶이 겹쳐 보였다. ‘자신에게 있어 하늘의 뜻은 농사구나’ 젊어서부터 마음먹고 정직하게 농사짓는 모습이 딱 그랬다.
농장 한 켠에 적혀 있는 강대인 농부의 글이 눈에 쿡 들어온다.

‘농부는 하늘 뜻에 따라 농사를 짓는 사람이요 농사란 하늘 뜻·흐름을 따름이요 하늘 땅·사람이 한데 힘을 모아 또 다른 생명 하나를 키움이라.’

오늘도 누렇게 익어가는 벌교 논 위에서 생명 하나를 키우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이들의 땀방울이 굵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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