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서평 선교사 (1)

성내교회의 전시실에 있는 한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다. ‘제주 부인조력회’라는 제목 속에 미소 짓고 있는 한 서양인 여자 선교사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전남 광주를 중심으로 선교하였던 서서평 선교사, 미국식 이름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z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년)이다.
서서평 선교사는 주기적으로 제주로 갔다. 그의 마지막 방문은 1933년 8월 제주 모슬포에서의 성경공부 모임이었다. 서로득 선교사가 건강악화의 이유로 극구 말렸지만 “건강이 회복된 다음에 하자면 하나님 사업은 미루어지지 않는가? 또, 그들과 약속한 일이니 가야 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가지 않을 수 없다”며 그녀는 강행하였다.
당시 이틀반이나 걸리는 뱃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1등석은 일본관리들, 2등석은 조선의 양반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서서평은 3등석, 조선의 천민들과 일본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탔다. 때로는 조선의 천민들이 일본관리와 양반들에게 멸시받는 일을 보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서서평은 모슬포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제주 모슬포에는 자기가 가르친 이일성경학교의 여자 제자들이 있었다. 150리, 200리나 되는 먼 거리에서 온 해녀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쇠약한 몸을 가눌 수 없어서 더운 물주머니를 허리에 얹고 침상에 누워 가르치기도 했다. 그녀의 모슬포교회 방문은 처음이 아니었다. 1919년 3월에도 모슬포로 들어가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다. 1925년 8월에도 제주도에 들어가서 교회를 돌며 성경을 가르치고 부인조력회를 만들었다. 부인조력회를 통해 제주여인들의 신앙과 가난한 생활을 돕고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28년 8월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1933년 8월의 제주도 선교를 마감한다. 1934년 6월 26일, 그렇게 광주에서 하나님 나라로 입성했다. 그의 마지막 제주도 선교사역을 지켜본 서로득 선교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찢겨지고 조각난 날개를 가지고서도 더 큰 비상을 하고 있는 그녀의 정열은 얼마나 아름다운 봉사이며, 비전이며, 승리인가! 그녀는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서서평의 땅끝 정신
서서평은 전남 광주에서 전남부인조력회를 결성하였다. 조선의 신앙의 어머니가 되어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섬기며 조선을 복음화하라는 비전을 심어주었다. 아무런 힘이 없던 여인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 중 한 숟가락의 쌀을 모아 선교를 하도록 했다. 이 쌀 한 숟가락의 힘으로 전남 부인조력회는 제주도로 이경필 목사, 김경신 전도사, 방계성 장로, 강형신 전도사를 파송한다. 그들을 통해 제주 추자도 신양교회, 제주 협재, 서귀포, 모슬포 교회 등은 하나님의 교회로 성장한다.
또한 서서평은 광주 봉선리교회(현재 여수 애양원교회) 한센교우들을 섬겼다. 그들도 하루 중 한 끼를 금식하며 제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눈을 고치기엔 늦었으나 영혼을 고치기에 늦지 않았다.” 제주의 영혼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하루의 식사 중 한 끼를 절약하여 선교사를 보낸 것이다. 서서평의 조선을 향한 땅끝 정신은 전남 부인조력회와 봉선리교회를 통하여 조선의 땅 끝, 제주로 이어졌다.
1925년 이후 미국에 대공황이 찾아오면서 조선에 대한 선교후원이 줄어들었다. 그때 조선에 온 한 미국선교사는 본국의 그리스도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여기 조선의 여인들은 무명하나 신앙의 독립을 이루었다네, 그뿐 아니라 재정적인 독립도 이루어 12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네, 그 힘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쌀 한 숟가락의 힘이라네, 미국의 그리스도인이여! 당신들이 매일 먹는 세끼의 식사 중 일부만을 떼어보게, 거기에는 조선의 영혼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있다네.”

무명의 조선 아낙네들, 한센교우들이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한 사건이었다.
서서평의 조선에서의 삶은 버려진 고아, 과부, 한센사람들에게 있었다. 그 정신이 조선의 땅 끝을 향해 이어졌다. 서서평은 바다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고통당하는 제주여인들과 해녀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딸로 살아가는 새로운 소망을 전해주었다.
제주여인들과 함께 찍은 성내교회 사진 속 서서평의 미소가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땅 끝에서 만난 하나님의 부유함이었다.

박원희
낙도선교회 대표로서 우리나라의 440여 섬과 14만 곳의 오지를 복음화하기 위해 38명의 섬, 오지 목회자와 동역하며 한국의 신학생들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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