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앙공동체를 다녀와서

누군가, 유럽은 숲을 일구고 그 사이에 집을 짓고, 우리나라는 집을 짓고 그 사이에 나무 몇 그루를 심는다 했다. 최근 한 달간 유럽의 신앙공동체들을 둘러보며 마치 ‘맑은 영혼들의 행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마리아 자매회
자매님들은 환영과 환송을 노래로 열고 닫아 주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무너진 벽돌로 교회를 지었다고 했다. 사람이 변하는 것만큼 큰 기적이 없다는 자매회의 말이 큰 울림으로 와 닿았다.
그리스도의 수난길을 걸으며 모든 상황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잘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신앙의 기본이 무엇인지 돌아봄에 부끄러움뿐이었다.

12지파 공동체
머리에 두건을 쓰고 팔에 바구니 끼고 종소리로 향하는 여인들, 초장을 뛰노는 당나귀들.
아, 평화였다. 춤을 추었다. 노래를 불렀다. 신의 은총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어쩌면 인생이란 춤추고 노래하는 것, 그 외에 무엇 있으랴 싶었다. 노트에 노랫말을 써보았다.
‘들녘에 바람이 불어 들꽃이 춤을 추네.
인생에 시련이 불어 영혼이 춤을 추네.’


실로아 공동체
자연은 하나님 생각의 결과물. 꽃 너머, 나무 너머, 풍경 너머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있었다. 자연보다 위대한 경전이 없다는 예술가들의 말에 더욱 힘이 실리게 하는 실로아 공동체. “창조주는 사랑이시라” 외치고 외쳐 보았다.

YMCA 쇠넨베르그
세상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이들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이곳에서 그 좋은 답을 본 것 같다.
리더 우베의 자녀는 7남매. 셋은 부부가 낳았고, 넷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로 입양했다. 그중 중증 장애아인 야니의 눈망울 속에서 예수님을 보았다. 야니를 안고 있던 우베에게 예수님을 안고 계시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떨어지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난한 영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리라.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세상을 살리는
사랑이 되리.’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르며 흘리는 우베의 눈물은 마치 천상에서 떨어지는 눈물 같았다. 예수님의 눈은 낮은 곳, 가난한 곳, 작은 자였다.

베첼 공동체
마중 나오신 율크 할아버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꼭 사과 하나씩을 선물한다고 하셨다. 사과 너머로 실낙원이 보이는 듯. 진정한 집은 마음속에 있다고. 그 집은 하나님의 집이며, 우리가 돌아갈 그 집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율크 할아버지의 말은 가슴에 떨어진 하늘씨앗 같았다.
베첼 공동체 사역 중 하나인 양로원을 돌아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나님 사랑에 쌓여 하루하루 노래와 춤으로, 그리고 기도하며 그렇게 고향별로 돌아가는 하얀 소년소녀들. 지금의 공동체가 희망을 품은 사랑과 평화로 서기까지 전쟁 같은 세월을 희생으로 이겨낸 하나님의 사람들. 그들의 삶과 양심, 정직, 성실을 보며 가슴에 흐르는 맑은 강물이 눈물임을 알 수 있었다.

부르더호프 공동체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켜온 믿음의 세대들이 작은 하나님의 나라를 일궈낸 쾌거를 보았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번져 가면 되는구나 싶었다. 교육, 일, 신앙, 삶, 모든 영역에 자발적인 헌신이 보였다.
떠나던 날 나의 호스트 마리오 형제는 나를 안으며 ‘우리는 형제’라고 말해주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말의 무게와 눈물 맺힌 눈망울에서 표현하기 힘든 ‘맑음’을 보았다.

떼제 공동체
종교전쟁이 극심했던 유럽. 분열로 방황하는 정신들. 일치와 화해를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까. 젊은 수사 로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유럽을 여행하다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점심식사에 초대를 받는다. “젊은이, 여기에 머물게.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외롭다네.” 로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여기고 즉시 순종했다. 떼제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수도공동체가 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정의를 고수하려고 칼을 든 신앙의 결국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사랑을 인하여 희생을 택했던 신앙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평화로 이어졌다.
로제가 지은 빌리지 처치 예배당에 침묵으로 앉았을 때 가눌 수 없는 큰 울림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잘 하려 하덜 말어. 니들 서로 사이좋게 살어. 그게 나한테 잘하는 거여. 나한테 잘하려 니들 서로 쌈박질하믄 나를 또 십자가로 내 모는 일인겨.’
유럽신앙공동체를 둘러보며 세상과 역사를 하나님 나라로 가꿔가는 사람은 모두 ‘맑은 영혼’이 아닌가, 그렇게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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